매일춘추-피아노는 거리로 가라

입력 2000-04-01 14:37:00

어릴 적, 피아노가 있는 집에 놀러 가면 기가 죽었다. 피아노는 장롱 다음으로 큰 가구였다. 그 크고 비싼 가구를 식구들 모두가 사용하거나 즐기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 집엔 대부분 음악을 전공하거나 전공하기 위해 준비하는 딸이 있었다. 아무튼 피아노가 있는 집의 분위기는 그윽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기타를 배웠다. 값싸고 기타를 가르쳐줄만한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쉽게 친숙해질 수 있었다. 어디든지 가지고 다니며 기타솜씨를 자랑할 수 있었고 그로 인해 사랑받을 수 있었다. 지금은 너무도 가끔씩 쳐보는 기타지만 그것은 내게 젊음을 누릴 수 있도록 해준 소중한 존재다. 지금도 누군가의 집에 초대받아 가면 그 집에 기타가 있는지를 살핀다. 대학 시절 그 많던 기타들은 모두 어디에 갔을꼬? 혹 피아노가 있어 흥을 돋울까 해보지만 대부분 연주곡을 쳐댈 뿐이다. 그 흔한 가요 하나 모두가 소리내어 부르고 싶도록 반주해 주는 사람은 드물다. 피아노는 우리에게 무엇일까? 교육용일까? 장식용일까?

우리가 쉽게 피아노를 만날 수 있는 곳은 공연전문 극장이나 강당, 교회 등이있다. 그러나 그 피아노들은 우리 일상과는 관계가 없다. 아주 가끔 사용될 순간을 위해 안치돼 있을 뿐. 서구가 만든 도구가운데 가장 인간적으로 보이는 율려의 도구, 피아노학원 방방이 들어앉아 있는 그 숱한 피아노가 우리 일상과는 관계가 없다.

작년 11월 동성로 대백 앞에서 박시홍 재즈밴드의 공연이 있었다. 공연 한 시간쯤 앞서 피아노가 도착했다. 음향장비보다 일찍 도착한 피아노는 혼자서 길 한복판에 서 있었다. 길가던 사람들의 걸음이 피아노곁을 지나며 느려진다. 그리고는 주변을 살핀다. "오늘 무슨 일 있나?"신기한 듯 바라보는 눈길에 난 피아노 대여료가 비싸다는 마음을 버렸다.

이런 생각을 해본다. 대학에서 피아노를 전공한 사람이 우리나라에 대체 몇명이나 될까? 그들이 일주일에 한 번씩만 거리나 공원에서 피아노를 연주한다면…. 아, 그 거리의 그윽함이란! 그런 일을 대비해서 공원이나 도심의 몇몇 중요한 거리에 피아노를 비치해 둔다면 어떨까? 피아노야! 거리로 가라.

마임연기자·왜관YMCA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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