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입논술

입력 2000-03-31 14:22:00

'교육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한 마디로 대답하기란 매우 어렵다. 왜냐 하면, 시대적 상황이나 사회 및 국가가 지니고 있는 이념에 따라 교육이 추구하는 인간상이 다르며, 또한 교육 사상가들의 세계관과 인생관에 따라 교육관이 다르기 때문이다

영어에는 교육을 뜻하는 말이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페다고지(pedagogy)이며, 다른 하나는 에듀케이션(education)이다. 페다고지는'어린이를 이끈다'라는 뜻에서 나온 말이다. 좀 더 자세히 말하면, 귀족 가정의 자녀들을 학교나 체육관 또는 기타 공공의 장소로 데리고 다니면서 도덕과 예의, 성격을 지도하던 데에서 비롯된 말이다. 에듀케이션은 '속에 지니고 있는 것을 밖으로 꺼내어 키워 준다'라는 뜻에서 나온 말이다. 다시 말하면, 인간이 선천적으로 지니고 태어났다고 생각되는 여러 가지의 자질을 잘 길러 주는 행위를 뜻한다. 이처럼 '페다고지'와 '에듀케이션'이라는 두 가지 말을 통해 볼 때, 서양에서의 교육은 '어린이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어 자신만이 지니고 있는 소질을 계발시켜 주는 것'이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동양의 한자 문명권에서 敎育(교육)이란, 敎와 育이라는 한자가 결합된 말이다. 여기서 敎라는 글자는 '교사는 회초리를 들고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하며, 어린이는 공손하게 어른을 본받는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 育은 '어머니가 어린이를 가슴에 따뜻하게 안아주는 모습'을 가리키고 있다. 따라서 동양에서의 교육이란 교사는 가르침을 주고 학생은 배우는 과정을 통해 후손을 잘 자라나게 하는 행위로 이해할 수 있다.

소크라테스는 만물의 척도로서의 인간은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을 먼저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자신의 무지를 자각할 것을 역설했다. 그의 교육은 바로 '너 자신을 알라'라는 사상에서 출발한다. 더욱 높은 자아를 자각하는 것이야말로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교육의 임무였다. 그는 교육의 목표를 모든 사람들에게 올바른 사고를 가르쳐 주는 데 두었다. 그리고 관찰과 경험을 통하여 교육을 직접 실시하였다. 그는 사람들에게 무엇이든지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지 말라고 충고했다. 또한, 그는 사람들에게 자기의 편견과 선입견을 버리도록 권고했다. 그는 우리가 살고 있는 무지의 세계를 지혜를 사랑하는 세계로 개선하고자 하였다.

플라톤은 동굴의 비유를 통하여 인간 정신의 교육에 관해 언급했다. 어두운 동굴 속에서 쇠사슬에 묶여 꼼짝도 못한 채 벽만 보고 있는 인간은 빛을 통해 나타난 가짜 영상인 그림자를 자신을 실체로 생각한다. 이런 인간은 나중에 햇빛 아래 내던져졌을 때, 진짜 자신의 실체를 보고도 이것을 진짜로 인식하지 못한다. 여기에서 교육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플라톤의 교육 목적은 바로 동굴의 속박을 벗어나 태양의 빛으로 실재를 보게 하는 데 있었다.

루소는 '사회 계약설'이나 '에밀'로 우리에게 친숙한 사상가이다. '자연으로 돌아가라'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자연주의 교육 철학자로 분류된다. 그가 지니고 있는 교육관은 '에밀'에 잘 나타나 있다. 루소는 일단 인위적인 것을 모두 부정한다. 그리고 자연적인 것으로 옮아가는 교육을 주장한다. 이는 당시의 부패한 관습과 타락한 문화를 비판한 데서 비롯되었다.

칸트는 인간을 '교육받지 않으면 안되는 유일한 피조물'로 보고 있다. 그는 인간은 미숙한 존재로 태어났기 때문에 반드시 교육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인간은 교육을 통하여 인간이 될 수 있다. 교육의 배경에는 인간의 완성이라는 커다란 비밀이 숨어 있다. 인간 속에 잠재해 있는 모든 소질을 발전시키는 교육의 이념은 두말할 나위 없이 진실한 것이다. 인간의 자연적 소질을 도덕적인 인격도야와 인간성의 완성으로까지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양육과 훈육이 필요하다'라고 했다.

페스탈로치는 루소의 '자연으로 돌아가라'라는 교육적 원리에 영향을 받았다. 루소는 선천적으로 한결같이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선한 인간성'을 믿었다. 페스탈로치는 이러한 루소의 영향을 수용하여 인간이 본래 가지고 있는 머리(지력)·가슴(심성)·손(기능), 이 세 가지를 조화롭게 발전시키고자 하였다. 더 나아가 인간의 비참한 상태를 개선하기 위하여 정치와 경제에 의존하지 않고 교육이라는 방법을 택하였다. 그는 교육을 통해 인류를 구원하려는 꿈을 갖고 있었다.

듀이는 교육을 인간이 사회 의식에 참여하는 행위로 보았다. 교육은 사회에 존재하는 생물과의 긴장 관계에서 성립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살아 있는 사회적 환경과 단절된 교육은 존재하지 않게 된다. 그래서 학교는 개인을 사회화하는 기관이 되고, 교육의 내용은 문제 해결 과정 속의 경험 그 자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런 교육의 과정을 거치면서 사회 진보와 혁신의 능력을 키워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에서 '교육-성장-사회화'라는 등식이 성립한다.

한편, 동양의 유학은 현실을 매우 중시하면서 자기를 수양하는 일을 교육의 근본으로 삼았다. 따라서 완성된 인격자인 성인이나 건전한 인격의 소유자인 군자가 되는 것이 교육의 중요한 목표였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모든 교육은 제각기 형태는 다르지만, 근본적인 면은 결국 '인간의 인간됨'을 추구하는 것이 분명하다. 어떤 시대적 상황에서 교육 행위가 진행되는지에 따라 내용과 형식이 달라질 따름이다. 요컨대 교육의 원칙은 그 사회 집단이 '바라는 인간'을 만들기 위한 그 무엇이라는 점이다.

---41차문제

문제:글 가)는 토머스 하디의 '테스'의 줄거리이고 나)는 소설 중의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하디는 19세기 후반 영국의 소설가였다. '테스'에는 사회적 세력이 인간성 및 인간의 운명을 좌우하는 요인이라는 작가의 사고가 반영되어 있다. '사회라는 대의지에 인간의 의지가 꺾일 수밖에 없다'는 하디의 견해에 찬·반 어느 한쪽을 선택하여 자신의 의견을 논술하라.

가)영국 남부 지방 '웨식스'의 조그마한 마을에 사는 가난하고 우둔한 행상인 존 다비필드의 장녀 테스는 순진하고 어여쁜 시골 처녀이다. 아버지는 가문 있는 기사(騎士) 혈통을 이은 더버빌가(家)의 직계 후손이라는 말을 듣고 우쭐해져서 더욱 나태에 빠져 술로 세월을 보내게 되고, 자식이 많은 집안은 점점 곤경에 빠진다.

테스는 가까운 이웃에 사는 같은 선조의 후손이라는 가짜 친척의 집에 하녀로 가게 된다. 그리고는 그 집 아들 알렉의 꼬임에 빠져 임신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태어난 아기는 곧 죽는다. 테스는 재생을 바라고 다시 낙농장에 젖짜는 인부로 일을 하게 된다. 그곳에서 목사의 아들 엔젤 클레어를 만나 서로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결혼식날 밤에 과거의 불행한 일을 고백하자 클레어는 실의에 빠져 그녀를 버리고 브라질로 떠난다.

테스는 모진 고난을 무릅쓰고 한결같이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면서 열심히 살려고 애를 쓴다. 그러나 불운은 겹치고 겹쳐 마지막으로 남편에 대한 호소도 허사로 돌아가고, 아버지를 여읜 자기의 가족을 살리기 위하여 재회한 알렉의 보호를 받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렇게 살던 중 스스로 비정(非情)을 뉘우치고 돌아온 남편 클레아를 보자 테스는 발작적으로 알렉을 죽이고, 남편과 도망하여 사랑을 되찾고 비로소 행복을 느낀다. 그러나 그녀는 곧 체포되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여기에서 테스에 대한 가혹한 '운명의 장난'은 끝이 난다.

나)(제시된 부분은 테스에게 매력을 느낀 클레어가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청혼하는 부분이다)

"귀여운 아가씨, 어찌 감히 더버빌의 후손이 클레어 가문의 명예에 먹칠을 할 수 있겠어? 당신이 그런 훌륭한 가문 출신이라는 것은 큰 힘이 되어 줄 거야. 우리가 결혼한 뒤에 트링검 목사가 증거한 당신의 혈통을 사람들에게 알려 그들을 깜짝 놀라게 해주고 싶어"

테스는 클레어의 가장 다정한 벗이 되어 이 세상을 살아가리라 생각하니 너무나 벅차 겨우 그렇게 하겠다는 대답만을 하였다. 그녀의 벅찬 감정은 출렁이는 파도 소리같이 귓가에 맴돌고 물밀 듯이 눈으로 밀려 나왔다. 테스는 클레어의 손에 자신의 손을 내맡긴 채, 햇빛이 물위에서 아롱대는 강가에 다다랐다. 햇살은 다리의 그늘에 가려져 다리 아래로 비치진 않았지만, 다리 밑 수면에서는 끓는 무쇠같이 광채를 내뿜어 눈부시게 반짝였다. 둘은 조용히 걸음을 멈추었다. 그들은 물가를 한없이 거닐었다. 이윽고 계절적으로나 시간적으로도 때 이른 안개가 자욱히 끼어 그들을 감싸자, 그녀의 속눈썹에는 수정 같은 이슬이 맺히고 머리 위로도 작은 물방울이 구슬같이 내려앉았다.

일요일이 되면, 그들은 주위에 어둠이 깔린 뒤에야 산책을 나섰다. 약혼을 한 뒤 처음 맞는 일요일 저녁, 바깥에 나와 있던 낙농장 일꾼들 중에는, 행복에 겨워 띄엄띄엄 끊어지듯 말하는 격정어린 테스의 목소리를 들은 사람도 있었다. 멀리 떨어져 있어 무슨 이야기인지는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클레어의 팔에 기대어 거닐다가 숨이 가쁘면 더듬거리는 목소리와 숨소리, 그리고 만족한 상태에서 우러나오는 영혼을 간질이는 웃음소리와 여러 여자 중에서 홀로 남자의 사랑을 차지한 여자만이 낼 수 있는 특유한 웃음소리를 엿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새가 땅 위로 내려왔다가 다시 재빠르게 날아가는 날개 소리와 같은, 테스의 날 듯한 발걸음 소리도 들렸다.

클레어에 대한 테스의 사랑은, 이제 그녀가 살아가는 생명이요, 호흡이 되어 버렸다. 그것은 하나의 빛이 되어 그녀를 둘러싸고 그녀를 끝없이 괴롭히던 의혹, 공포, 두려움의 유령들을 물리치고 지나간 슬픈 일을 잊게 했다. 그러나 이 유령들이 그녀에게서 물러나 빛의 둘레에서 늑대처럼 자신을 노리고 있다는 걸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들을 굶겨서 영원히 사라져 버리게 할 끈질긴 힘 역시 그녀는 가지고 있지 않음을 알고 있었다. 정신의 망각 뒤에는 어두운 기억이 떠올라 왔다. 그녀는 빛 가운데를 걷고 있었으나, 그 뒤쪽에는 어둠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어둠의 그림자는 매일 조금씩 멀어져 가는 것도 같고, 또한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것 같기도 했다.

---39차문제 최우수작

근대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과학은 급속도로 발달하였다. 이에 따라 인간은 자연의 제반 현상을 설명하는 데 과학적 지식을 이용해 왔다. 이는 그간의 모든 현상을 신, 무속 세계 중심으로 인식해 왔던 신화적 설명을 크게 위축시켰다. 그러나 우주의 탄생에 대해 빅뱅 이론과 신의 창조론이 대립하고 있는 것에서도 볼 수 있듯이, 신화적 설명은 지금도 그 힘을 발휘하고 있다. (1)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자연 현상에 대한 '과학적 설명'과 '신화적 설명'에 대해 그 타당성 여부를 고찰해 보고 올바른 관점을 모색해 보자.

자연 현상을 신화적으로 설명하려는 태도에는 많은 문제점이 따른다. 먼저 사물을 인식하고 행위의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점이나 굿 등에 의존하는 것을 들 수 있다. 물론 그것이 신통력이 있다고 믿음으로써 어느 정도의 심리적 안정을 얻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본질적으로 비합리적인 것이므로 이를 토대로 인식하고 행동을 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리고 신이나 종교를 맹목적이고 광신적으로 믿음으로써 그릇된 가치관을 낳아 개인은 물론이고 사회적 파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왜곡된 종교 집단의 테러 행위나 집단 자살 사건 등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또 세상은 신의 오묘한 섭리에 의해 움직인다는 생각은 인간에게 운명론적 사고를 심어 줄 우려가 있다. 이러한 사고는 개인의 능동적이고 발전적인 면을 무시함으로써 자아 실현을 어렵게 하고 나아가 사회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 끝으로 객관적인 증거가 확보되지 않은 부분에 대한 신화적 설명은 특정 권력의 체제 유지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 또한 지니고 있다. 이는 중세의 교회가 막강한 힘을 가지고 인간 위에 군림한 예가 그것이다.

이에 반해 과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세계의 기본 구조를 해명하려는 관점은 세계의 구조를 객관적 근거를 바탕으로 설명한다는 점에서 신화적 설명보다 합리적인 면을 띤다. 그리고 신적 존재를 배제하는 과학적 인식은 인간에게 능동적 역할의 중요성을 인식시킴으로써 사회가 진보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 준다. 다시 말해 인간이 신의 지배하에서 가졌던 "나는 무엇을 해야만 한다"는 의무 의식에서 벗어나 "나는 무엇인가를 하고자 한다"는 자유 의지를 고취하는 데 과학적 인식이 큰 역할을 했다. 제시문에서 다이달로스가 날개를 만들어 미궁을 탈출한 것은 인류가 발전해 온 역사와 맥락을 같이한다.

인류의 위기와 그것의 극복이라는 역사의 과정에서 위기를 타개하는 데 필수적이었던 것은 과학의 힘이었다. 인구의 폭발적 증가에 대한 식량 증산이나 불치병에 대한 의료 기술 향상이 그 예라 하겠다. 반면에 신적 존재에 의존하는 태도는 현실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데 미신적 존재에 호소하기 때문에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가뭄을 해소하기 위해 기우제를 지내는 것은 문제의 본질에서 벗어나 인간의 심리적 안정 이상의 의미를 지니기 어렵다.

빅뱅 이론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이 우주가 태초의 폭발이 일어난 지 10죚38 초 이후부터 현재까지 있었던 우주의 운동을 설명할 수 있다고 한다. 그만큼 신화적 설명은 과학의 발전에 따라 그 설득력을 잃어 가고 있다. 물론 뉴턴의 고전 역학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의해 수정되었듯이 과학적 설명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그리고 신화적 설명 역시 과학이 절대적 진리가 아닌 이상 그 타당성을 지닌다. 그러나 과학적 설명은 신화적 설명보다 합리적이고 인류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된다는 면에서 신화적 설명을 대체할 수 있는 논리라 할 수 있다.-이 용 주(협성고 3년)

---39차문제 총평

이번 문제는 세계를 포괄적으로 해명하는데 '과학적 설명'과 '신화적 설명'의 관점 중 어느 것이 더 바람직한지 자신의 관점을 정하고 그것의 정당성과 다른 관점의 문제점을 논술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관점 선택의 문제를 쓸 때에는 두 가지 주장을 냉정히 비교해 보고 상대적으로 더 바람직하다는 자신의 견해가 정해지면 자신의 선택에 대해서는 적극적 옹호를 하고 다른 견해에 대해서는 적극적 비판을 해야 한다. 그래야 논지가 분명해지고 글의 내용이 설득력을 갖는다.

이번 논술 문제에서는 협성고등학교 3학년 이용주 학생의 글을 최우수작으로 뽑았다. 학생의 글은 전체적으로 무난하게 잘 쓴 편이다. 그러나 (1)의 경우는 '그러나 과학적 설명이 객관적인 설득력을 갖는다' 정도로 자신의 견해를 분명히 밝혀 주는 것이 더 낫다. 결론 끝 부분도 과학적 설명의 정당성으로 마무리하는 것이 더 낫다.

그래야 채점자가 서론에서부터 학생의 글의 내용을 예견하면서 읽을 수 있고 마무리에서 그 정당성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 학생처럼 쓰면 객관성은 확보할 수 있으나 명료성이 떨어진다.

협성고등학교 3학년 김동현 학생의 글도 매우 잘 쓴 글이다. 그러나 본론의 셋째 단락에서 '그 밖에도'로 시작하면 안 된다. 이는 과제 제시형 결론 쓰기의 방식이다. 본론에서 논의하지 못한 것이지만 중요한 논의 내용이 될 수 있는 것을 하나 더 소개하는 형식이다. 그리고 이는 앞의 두 단락과 내용상 대등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여 본론의 짜임새가 흐트러지는 원인이 된다.

학생처럼 쓴 이유는 본론을 다 쓰고 분량이 모자라 덧붙였거나 써 나가다가 떠오는 생각을 버리지 못해서이다. 좋은 논술을 쓰려면 깊이 생각하고 많은 자료를 모으고 실재로 쓸 때에는 과감히 버리고 단순 명료하게 쓰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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