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시론-지역감정에 흔들리지 말자

입력 2000-03-24 00:00:00

지역감정은 선거철마다 정치인들에 의해 정략적으로 악용되면서 갈수록 심화되어 국민화합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번 총선 역시 예외가 아니어서 여야를 막론하고 '지역감정 책임 공방'에서부터 '영남정권 재창출', '곁불 쬐는 충청도', '경기도는 정치식민지'까지 치졸한 원색 발언들을 쏟아내고 있다.

애향심이나 애교심(愛校心)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집단을 다른 집단보다 무조건 더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두 집단이 공유할 수 없는 목표를 갖고 경쟁하게 되면 갈등이 생긴다. 두 집단 간의 갈등은 집단 구성원들로 하여금 개인적 이해와 실제로 관계없는 사항에 대해서도 관계있는 것으로 오판하게 만들며, 상대 집단의 행위가 자신의 불이익을 목표로 하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한다. 이러한 착각은 상대 집단에 대한 적대감과 차별 행동을 불러 일으키고, 적대적 차별을 당한 상대 집단은 동일한 적대 행위로 대응하면서 집단간의 갈등은 확대 재생산된다.

지역감정이 심화된 과정도 이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으며, 그 책임은 거의 전적으로 정치인에게 있다. 대선에 출마한 후보자들이나 총선에 나선 정당들은 서로 다른 지역적 지지기반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무기로 다른 지역 연고를 가진 인물이 당선되면 지역민들이 마치 큰 손해를 입을 것처럼 선동하여 타지역 출신 후보나 정당에 대한 적대감을 부추기곤 했다.

지역감정이 표면화되고 전파되는 데는 매스컴도 큰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방송 3사가 이번 총선과 관련한 지역감정 촉발 발언을 보도하지 않기로 결의한 것은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며, 시민단체들이 천명한 지역감정 선동 후보자 낙선운동 역시 지역감정의 회오리바람을 조금은 막을 수 있겠다는 기대를 갖게 한다.

그러나 썩어빠진 정치인들을 솎아내기 위해서는 유권자들의 자각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제까지 국민들이 지역감정을 부추긴 정치권의 장난에 끌려다닌 근본적 이유는 자기 지역 출신 후보나 자기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정당 후보가 당선되지 않으면 자신과 지역에 뭔가 불이익이 가해질 것 같은 근거없는 피해의식 때문이었다.

냉정하게 따져보면 어느 정당 후보가 당선되더라도 일반 대중의 삶은 크게 달라질 게 없다. 단지 지역감정에 편승하여 권세를 잡으려는 정치잡배들이나 그들에게 아부하여 목숨을 부지하려는 일부 탐관오리들의 인생은 경쟁자가 당선되면 큰 타격을 받는다. 그렇기에 그들은 필사적으로 지역감정에 매달리는 것이다.

IMF 위기를 맞았을 때 YS의 기반인 부산지역의 경제도 함께 몰락한 예를 보더라도 오늘날 어느 지역은 성하고 어느 지역은 망한다는 식의 논리는 이제 설득력이 없다. 온 나라가 지역감정에 휘말릴 때 수혜자는 썩은 정치인들이고, 피해자는 언제나 악취 풍기는 정치판을 구경해야 하는 국민일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이 코 앞에 닥친 지역감정의 폐해를 줄이려는 노력과 별도로 근본적인 해결방안도 검토되어야 한다. 사회과학자들은 사회병리의 해결이 신체병리의 치료와 같은 이치임을 강조한다. 신체병리의 치료와 마찬가지로 사회병리의 해결에도 풍부한 지식과 다양한 경험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지식과 경험이 없이 사회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은 원인도 증상도 모르는 질병을 치료하겠다고 나서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지역감정을 망국병이라 부르며 걱정하는 소리는 요란하지만 이에 관한 체계적인 연구와 대책은 놀랄만큼 부족하다. 미국의 흑백갈등이 학계의 과학적 연구와 정부의 제도적 지원으로 상당히 감소된 사실은 우리에게 교훈을 준다. 앞으로 정부차원에서 지역감정의 실태와 원인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그 바탕에서 실현가능한 해결책들을 수립.시행해야 하며 시행된 방안들의 효과를 평가하는데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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