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천년 교실/새바람 분다-성광고 대안학급 '꾸러기반'

입력 2000-03-13 14:12:00

지난달 21일 대구 성광고 1학년 12반 교실. 2학년 진학을 앞둔 마지막인 이날 교실은 마치 졸업식장을 방불케 했다. 학생들이 차례차례 교단에 올라가 지난 한 해를 보낸 소감을 이야기하는 것은 평범한 모습. 그러나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여느 학급과 전혀 달랐다.

"처음 이 반에 배정됐을 때는 내가 고작 이런 반에 들어오려고 지금껏 공부했단 말인가 하는 허탈감이 들었습니다. 모든 희망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하면 학기초에 내가 12반이라는 사실을 부끄러워했다는 사실이 부끄럽습니다"

"이 학급에 있었기 때문에 더 많은 교육의 기회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만약 신입생이라면 다시 이 학급에 서슴 없이 지원할 것입니다"

학생들이 이야기하는 동안 뒷전에서 눈시울을 붉히던 학부모들도 교단에 올랐다. "처음에는 당황하고 마음이 놓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자녀가 학교생활을 재미있어 하고 성적도 향상되는 모습을 보면서 이 학급에 속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할 정도로 지금은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학교에 감사드립니다"

다름 아닌 대안학급의 보기 드문 성공사례로 꼽히는 성광고 '꾸러기반'의 '반성과 결단의 날' 행사였다.

'꾸러기반'이 편성된 것은 지난해 3월. 신입생 660명 가운데 611등 이하 학생들을 모은 학급이다. 그러나 편성이유는 기존 부진아반이나 열반과는 크게 달랐다. 박경우 교장은 "초기 성적이 낮다고 그대로 방치하면 공부수준이 맞지 않고 학교생활에도 적응을 못해 결국 중도탈락할 수밖에 없다"면서 "공부와 학교생활에 흥미를 붙여주기 위한 학교측의 특별한 의지가 담긴 학급"이라고 설명했다.

가장 먼저 부딪힌 문제는 학부모들의 반발. "왜 우리 아이가 그런 반에 들어가야 하느냐"는 것이었다. 교장, 교감, 학생부장, 담임교사가 학부모들을 분담해 끊임없는 설득에 들어갔고 학기가 시작됐다.

학생들도 마찬가지 이유로 불평을 터뜨렸지만 학기가 진행되면서 분위기는 금세 달라졌다. 인성교육과 학력증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프로그램이 다양하게 펼쳐진 것.

우선 현장 체험학습 프로그램이 대폭 도입됐다. 앞산공원 일대 자연탐사를 시작으로 매주 '꾸러기반'만의 특별 행사가 마련됐다. 초청강연회, 음악감상회, 미술전람회, 경주 문화체험 등이 잇따랐다.

7월에 다녀온 전남 고흥군 소록도는 학생들에게 가장 큰 기억으로 남고 있다. 남모군은 "힘들지만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병자들, 그렇지만 맑은 영혼을 가진 사람들을 보면서 많은 것을 깨달았다. 우리 반 아이들이 모두 더욱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고 체험담을 적었다.

이같은 프로그램은 12월까지 28개나 진행됐다. 경비 대부분은 학교에서 지원됐고 갈수록 학부모들의 참여가 늘어났다.

수업에는 전 과목 교사들의 특별한 노력이 담겼다. 중학교 과정의 기초를 다시 한번 이해.확인시키는 한편 다른 학급의 수업진도에 맞춰 고교 과정을 진행하는 두배의 땀을 쏟은 것.

당연히 성적도 상승했다. 첫 중간고사에서 입학성적 621등이던 학생이 전교 380등으로 무려 241등이나 뛰어오른 것을 비롯, 17명이 반 편성 기준인 611등 위로 올라갔다. 2학기에는 전체 43명 가운데 국어 23명, 수학 24명, 영어 28명 등이 1학기보다 높은 성취를 보였다. 학년말에는 학급의 절반 가까이가 600등 안쪽으로 들어간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꾸러기'들을 한데 모아두면 학급분위기 잡기가 극히 나쁠 것이라는 우려는 기우에 그쳤다. 박운용 학생부장은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은 거의 없고 오히려 다른 학급에서 문제가 더 많이 생겼다"고 말했다.

2학기가 되자 '꾸러기반'은 다른 학생들이 부러워하고 동경하는 학급이 됐다. 주위를 어슬렁거리며 "이번엔 무슨 행사가 있느냐"고 물어댔고 "내가 갔어야 하는데"라며 아쉬워하는 학생도 적지 않았다.

'꾸러기반'은 올해 2학년으로 진학하면서 뿔뿔이 흩어졌지만 대신 1학년 신입생들 가운데 희망자 위주로 다시 편성돼 성광고 '꾸러기반'이라는 새로운 전통을 이어가게 됐다.

성광고 대안학급의 성공은 의미있게 받아들여진다. 교사들의 노력에 사학재단의 깊은 관심과 지원이 뒷받침되면 일반 학교에서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들도 얼마든지 자신의 길을 찾아줄 수 있다는 것이 입증된 셈이기 때문이다.

성광고 대안학급은 지난해 하반기 이후 대구지역은 물론이고 교육부 발표, 교육박람회 참가 등 전국에 소개됐다. 대구시 교육청은 성광고를 대안학급 준거학교로 지정, 다른 학교의 동참을 유도하고 있다. 충남도 교육청은 성광고 사례를 모범으로 올해 지역내에 시범학교를 운영한 뒤 내년에는 전 학교로 확대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러나 각 학교에서 도입하기는 아직 쉽지 않아 보인다. 일반 학급보다 몇 배의 노력이 필요한데다 학생.학부모들의 반발을 다독일 수 있는 풍부한 프로그램, 그만큼의 성과가 요구되기 때문이다. 교사들은 "사립의 경우 재단과 학교장의 의지만 있으면 어느 정도 가능하지만 이런 형태의 학교운영에 지원이 별로 없는 공립은 아예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학교와 교사, 학생과 학부모 모두가 대학입학이라는 좁은 문만 쳐다보고 내달리게 하는 교육정책에 근본적인 변화가 요구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우쳐주는 현장이다. 金在璥기자

◈성광고 '꾸러기반' 담임 김기식 교사

〈꾸러기반 담임 김기식교사〉

"지난 1년 동안 꾸러기반 담임을 맡으면서 참으로 소중한 경험을 했습니다. 학급편성 첫 날 일그러져 있던 학생들의 표정이 마지막 날 결단식에서 소리없는 눈물로 이어지기까지 학생, 학부모, 교사들 모두가 무던히도 노력한 것 같습니다"

지난해 성광고 '꾸러기반' 담임을 맡았던 김기식 교사는 "평범한 학생도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재삼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초기에는 대안학급이라는 굴레 속에 학생들을 모았다는 사실 자체가 비인격적이고 비교육적이 아닌가 하는 걱정도 많았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그는 단순히 현 교육제도의 미비점을 보완하고 그에 대한 대안으로 구성된 소극적 의미의 특별학급이 아니라 입시위주의 교육에서 소외될 여지가 많았던 계층의 학생들에게 다양한 교육적 체험기회를 제공하는 실천적인 형태라고 강조했다"처음에는 내키지 않아 하던 학부모들이 태도를 바꿔 적극 동참할 때 큰 힘이 됐습니다. 2학년에 올라가자 방학 때 우리 아이를 지도해 달라는 학부모도 있습니다. 그 분들이 결단식 날 흘렸던 눈물은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김 교사는 특별학급이 편성됐다 해도 모든 학생이 소위 훌륭한 학생으로 변화하고 문젯거리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1년이 다 가고 겨울방학 때 실시한 특별수업 중에는 단 하루도 지각과 결석자 관리에 마음 졸이지 않은 날이 없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는 학생들과 함께 2학년으로 올라왔다. 각반에 흩어져 있는 아이들을 간접적으로 계속 관리하기 위해서다.

"대안학급 운영의 경험을 축적하고 재정적 어려움이 없도록 지원해 주는 것이 가장 시급한 문제"라고 말하는 김 교사는 "다른 교사들도 이같은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金在璥기자

◈대안학교 유형

성광고 대안학급은 일반적으로 이야기되는 대안학교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대안학교는 대부분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를 존중하는 공동체교육을 목표로 한다. 제도교육과의 관련 정도에 따라 틀 속, 틀 곁, 틀 밖으로 나뉜다.

'틀 속' 유형은 새로운 교육과정을 운영하되 국가의 감독과 통제 아래 실시하는 학교로 경남 거창고 등이 속한다. '틀 곁' 유형은 학력인정 고교의 형태를 취하는 풀무농업기술학교와 영산성지고 등이 대표적이다. '틀 밖' 유형은 제도교육과 무관하게 이뤄지는 자유로운 형태의 대안학교다. 지역의 민들레학교가 여기에 포함된다.

운영형태에 따라서는 일반학교와 같은 정규학교형, 방학기간을 이용해 문을 여는 계절학교형, 방과 후 프로그램형 등이 있다.

외국의 경우 학교 울타리를 벗어나 다양한 교과과정으로 청소년들을 가르치는 탈학교 모임들이 많다.

85년 생긴 일본 도교 슈레(정신을 자유롭게 하는 장소라는 뜻의 그리스어)는 80년대 집단 따돌림, 학교폭력이 난무하자 '등교 거부를 걱정하는 전국 네트워크'라는 모임이 생기면서 시작됐다. 7~18세의 아이들이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자유롭게 학교에 나와 공부하고 교과운영은 매주 회의를 통해 결정한다. 73개 단체 2만여명이 관련돼 있다.

스위스의 바젤 슈타이너 학교는 교사와 학생, 학부모가 함께 꾸며가는 학교. 3개월마다 공부한 내용을 강당에 모여 발표한다. 이 밖에도 일본의 프리다스, 독일의 발도르프 학교, 태국의 어린이마을학교 무반덱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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