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창가에서-40대 작은 영웅들

입력 2000-03-11 14:39:00

노래방에서 무슨 노래를 불러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는 사람은 대개 40대다. 50대는 대부분 트로트풍의 흘러간 옛노래를 찾고 30대는 약속이나 한 듯 요즘 유행하는 신세대 노래를 즐긴다. 여기서 40대의 갈등은 시작된다.

흘러간 노래를 부르자니 무슨 '애늙은이' 취급을 당하고 신곡을 부르자니 단테의 신곡(神曲)만큼이나 어렵다. 그래서 좌중을 훑어보고 50대 형님층이 많으면 슬픈 노래를 부르고 30대 후배들이 많으면 신곡 엇비슷한 노래로 한곡 때우고는 슬그머니 자리를 비운다. 그렇지 않으면 후배들로부터 눈총받기 십상이다. 이렇듯 오늘을 사는 40대는 야누스의 두 얼굴을 갖고있다.

##서러운 안팎곱사등이

40대가 이처럼 눈치세대인 것은 50대가 갖고있는 아날로그 문화와 30대가 향유하는 디지털 문화의 중간에서 양자를 모두 흡수해야하는 '안팎곱사등이'가 돼있기 때문이다. 선배를 이해하지 못하면 버릇이 없다고 비난을 받고 후배를 이해하지 못하면 변화에 둔감하다는 화살이 날아 온다. 불혹(不惑)의 나이지만 오히려 미혹(迷惑)이 더해 가고 있는 세대가 바로 40대다.

그래서 이들은 사회에서도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한다. 격변하는 사회의 높은 파고로 인해 드리워진 어두운 그림자는 되레 이들에게 모진 상처를 남기고 있다. 방황하는 40대. 그 터널의 끝은 어디인가를 놓고 요즘 사회적인 분석이 한창이다.

##신.구세대 연결 허리

그러나 방황은 잠시, 이땅의 40대는 작은 영웅들이다. 그들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바뀌고 있는 두 문화를 자연스레 연결하는 바통역할을 하고있기 때문이다. 바통터치가 자연스럽지 못하면 양자는 충돌하는 법.

그리스 신화를 보자. 아테네에 민주주의의 금자탑을 세운 테세우스는 영웅이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그리스보다 크레타문명이 더 찬란했다. 영웅은 문명의 중심지를 섬에서 육지로 옮겨야 할 필연성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갑작스런 이전 두 문화의 분열을 초래할 것은 뻔한 일. 테세우스는 이를 멋지게 해결했다.

테세우스는 크레타 섬 미궁에 갇혀 해마다 아테네 젊은이들을 제물로 요구하는 우두인신(牛頭人身)의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처치한다는 명목으로 크레타섬에 당도했다. 크레타 공주 아리아드네의 도움으로 괴물을 처치한 후 그녀가 건네준 실타래로 미궁을 빠져나온 테세우스는 무사히 아테네로 귀환한다. 크레타의 구(舊)문명이 그리스 신(新)문화로 자연스럽게 옮겨지는 극적인 순간이다.

또 있다. 소아시아에서 세력을 떨치고 있는 트로이를 그리스가 곱게 봤을 리가 없다. 그래서 사과 하나를 던져 불화를 만들어 전쟁을 일으키고 이 전쟁에 불세출의 영웅 아킬레스를 등장시켰다. 비록 아킬레스는 죽음을 맞지만 그의 공로로 그리스는 전쟁에서 승리, 트로이 문명은 그리스로 자연스레 전이됐다.

어느 사회나 발전은 갈등을 동반하게 마련이다. 그 갈등 해소책으로 그리스 신화에는 영웅이 자주 등장한다. 이 땅의 40대는 신화의 영웅처럼 그렇게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는 못하지만 50대와 30대 사이에서 '윤활유'역할은 훌륭히 수행하고 있다.

##침묵하는 우리 사회 기둥

비록 전과(戰果)는 없지만 40대는 분명 우리 사회의 허리다. 이 땅에서 구조조정에 시달리기도 하고 더러는 자본주의의 그늘에서 남몰래 신음하고 있을 40대여, 그대는 분명 침묵하고 있는 작은 영웅들이다.

변화는 변화를 기다리는 자의 몫. 그 기회가 다시 찾아올 때를 기다리며 지금 우리의 영웅들은 신선한 윤활유를 펑펑 쏟아 놓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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