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근로 흥청망청 놀자판

입력 2000-03-11 00:00:00

엉터리 작업에 '공사 다시'

공공근로사업으로 1억2천만원의 예산을 들여 착공한 대구시 동구 덕곡동 농로 개설공사 현장. 어처구니없게도 유입수로가 콘크리트로 꽉막혀 포클레인을 동원, 다시 뜯어내고 있다.

10일 오후 2시30분쯤 대구시 동구 우방 강촌마을앞 금호강변 둔치. 한 무리의 때 이른 행락객이 놀러나왔나싶은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한 쪽에서는 1.8ℓ들이 소주 페트병을 가운데 두고 4명이 술파티를 벌이고 있었고, 바로 옆에는 10여명이 모닥불을 피워놓고 잡담에 열중했다. 군데군데서는 아주머니들이 한가롭게 봄나물을 뜯고 있었다. 또 몇몇은 몸을 흔들며 춤까지 추는 모습이 보였다.

어느 유원지의 한 장면같은 이 곳은 엄연히 동구청이 지난 1월10일 부터 이 달 말까지 시행하고 있는 올 1단계 공공근로사업의 한 현장. 금호강변 둔치조성사업을 이름으로 내걸고 매일 250여명의 공공근로자들을 투입하는 곳이다.

이 날도 호수로 잔디에 물을 뿌리는 공공근로자 5, 6명과 벤치조성공사에 투입된 근로자 10여명 등을 제외한 대부분의 공공근로자들이 일손을 놓은 채 시간만 떼우는 식이었다. 감독관들이 호루라기를 불며 작업을 독려하는 모습이 보이기는 했으나 대부분 듣는 둥 마는 둥이었다.

이런 식으로 하루를 보내고 나면 일당 2만2천원을 손에 쥔 공공근로자들 가운데 일부는 자가용을 몰고 집으로 돌아간다. 우방 강촌마을 주민 최모(여.45)씨는 "이런 모습을 보다못해 주민들이 대구시에 수 차례 진정을 냈지만 근무행태는 고쳐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같은날 오후 3시10분쯤 동구 봉무공원 숲가꾸기 사업장. 역시 4명의 공공근로자들이 매점앞 탁자에 걸터앉아 먹걸리 3병을 비운 채 잡담을 벌이고 있었다.

공원관리소장이 일을 재촉했지만 되레 술자리에 끌어들이려 했다. 삽을 들고 어슬렁거리는 사람, 벤치에 앉아 담배피우는 근로자, 무리지어 잡담을 즐기는 사람 등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이계수 공원관리소장은 "공공근로장소가 산속이어서 일부 근로자들이 소주를 몰래 숨겨오는 경우가 잦으며, 술을 가져오지 말라고 이야기를 해도 허사"라고 말했다이같은 무성의한 근무태도와 감독소홀은 공공근로라는 이름으로 행해진 공사들이 부실로 나타나는 사례도 적잖아, 국민세금만 날리고 있다.

대구시 동구청은 1억2천만원의 예산과 공공근로자 연인원 3천명을 투입, 지난해 4월부터 동구 덕곡동에서 벌였던 농로개설공사는, 당시 엉터리 작업 때문에 콘크리트로 수로가 막힌 것으로 밝혀져 포크레인을 동원해, 농로를 다시 뜯어내고 있다.이처럼 공공근로 현장은 IMF 사태에 대한 사회전반의 경계심이 흐려지면서 '놀자판'으로 변질하고 있으며, 특히 최근 총선 분위기에 편승해 근로의식은 급속히 해이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올해 대구시 전체 공공근로 예산은 503억원(국비 및 시비 각 50%)으로, 이 중 1단계 공공근로사업(1~3월)에 183억원을 집행했다.

동구청 관계자는 "내달부터는 1단계보다 예산을 대폭 줄여 꼭 필요한 사업을 중심으로 공공근로사업을 운영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李鍾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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