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이 임박한때 대구 동구에 출마한 어느 후보 사무실에 신사 한 분이 나타나 "만촌동에서 3천표는 문제 없다"고 장담했다. 그러나 만촌동은 수성선거구쪽인지라 실망한 후보가 "그 곳은 제 지역구가 아닌데요"라고 하자 이 양반 한 수 더 떠서 "그렇다면 더 좋지. 신암동에는 우리 문중이 수백가구 산답니다"라고 물고 늘어져서 기어이 얼마간의 '촌지'를 받아냈다. 이것은 과거 총선때 있었던 일화이지만 요즘도 이같은 정경은 여전하다. 출마자 쪽에서는 몇 표를 모아 주겠다고 다가드는 사람의 대부분이 엉터리인줄 알더라도 딱 부러지게 거절을 못한다. 막상 거절을 하고 나면 앙심을 품고 돌아다니며 '인간성이 나쁘다', '첩이 몇이나 된다'는 등 흑색선전에 시달려야 한다. 때문에 후보자들은 웬만하면 이들을 적당하게 달래려고 한다. 한나라당 서울 노원갑 공천자인 윤방부(尹邦夫)씨가 선거브로커에 시달리다 6일만에 공천을 반납했다. 윤씨 뿐 아니라 서상록(徐相祿) 전 삼미그룹 부회장과 허문도(許文道) 전 통일원장관도 비슷한 이유로 출마를 포기했다는 사실은 총선을 앞두고 총선 출마자를 겨냥, 브로커들이 날뛰고 있음을 드러낸 게 된다. 이를 두고 평생 자기 분야에서 잘 나가던 사람이 이번에는 금배지를 거저 주워 먹으려다(?) '그쯤되는' 일에 기겁을 하고 두 손을 들어버린 해프닝으로 보는 시각도 없지 않다. 그러나 어찌보면 이들의 후보 사퇴는 깨끗한 정치를 염두에 둔 정치 지망생이 처음부터 브로커들의 검은 손에 염증을 느낀 나머지 내린 결단이라 굳이 믿고 싶다. 실상 우리네 국회의원(특히 초선의원)들은 공천을 받기 위해 연줄을 찾아야 하고, 조직강화특위 위원에게 추파를 던져야 한다. 그리고 공천을 따내는 순간부터 브로커들의 공격 목표가 돼야 하고…. "이처럼 비정상적인 공천과 선거 과정을 겪고 당선 되는 순간 이미 순수한 정치 열정은 사라지고 한사람의 정치꾼이 될 수밖에 없다"는 어느 다선 의원의 고백은 우리 정치 현실의 가장 아픈 곳을 찌르고 있는 것으로 새삼 되뇌어진다.
김찬석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