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벤처 1번지 테헤란로

입력 2000-02-24 14:00:00

지난 17일 오후.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엔 왕복 8차로를 꽉 메운 차량행렬 위로 '벤처 파워, 벤처 한국'이란 수많은 깃발이 태극기와 함께 나부끼고 있었다. 하루전 서울시는 테헤란로와 양재·포이동 일대를 올 하반기중 '벤처특구'로 지정, 세제감면과 자금지원 혜택을 주겠다고 공식 선언한 터였다. 테헤란로 일대가 한국 '벤처 1번지'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테헤란로는 서울 지하철 2호선 강남역에서 역삼-선릉역을 거쳐 삼성역에 이르는 3.8㎞구간. 한때 국내 금융비즈니스의 중추 역할을 했던 이곳은 IMF이후 잇단 구조조정으로 금융기관 점포들이 급속히 퇴출되면서 지난해 하반기부터 정보기술(IT) 관련 기업들과 갓 출발한 인터넷 벤처, 벤처캐피털 회사들이 속속 밀집, '한국의 실리콘밸리'로 통한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이곳엔 현재 100여개의 정보통신업체와 1천500여개의 첨단 벤처가 모여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삼성SDS, 한솔엠닷컴, LG텔레콤, 한국통신프리텔 등 대기업은 물론 야후코리아, 네이버, 한글과 컴퓨터, 드림위즈, 안철수바이러스연구소 등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벤처들과 서버전문 외국업체인 오라클, 30여개의 벤처기업 홍보대행사까지 가세, 벤처산업의 '메카'를 이루고 있다.

▨왜 테헤란로인가

벤처기업들이 테헤란로로 몰리는 가장 큰 이유는 비즈니스 네트워크 구축이 쉽기 때문. 첨단업체들이 밀집돼 있다보니 상생(相生)을 위한 전략적 제휴를 하기가 쉽고 마케팅 활동이 용이한 것. 특히 인터넷 관련 벤처의 경우 광케이블망 등 테헤란로의 잘 완비된 인프라 활용에 큰 매력을 느끼고 있다.

지방에 비해 훨씬 빠른 정보 접근성도 장점으로 꼽힌다. 18일 오전9시 테헤란로에 자리한 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도 미래에셋등 일단의 벤처캐피탈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벤처투자 관련 조찬회가 열리고 있었다. 이 모임에 참석한 대구창업투자(주) 신장철(48)이사는'벤처업계의 최신 기술동향과 투자정보를 얻을 수 있어 일주일에 2, 3번은 이곳을 찾는다'며'벤처기업인과 투자자, 외국 바이어간 정보교환을 위한 벤처 모임이 이곳에선 이미 하나의 관행으로 정착돼 있다'고 귀띔했다.풍부한 우수인력과 지하철을 이용한 편리한 대중교통 환경도 빼놓을 수 없는 장점▨테헤란로 신풍속도

테헤란로가 한국 벤처산업의 상징으로 떠오르면서 이 일대 건물 임대료도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지난해말만 해도 임대료가 저렴한 편이었지만 요즘은 빈 사무실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 평당 보증금만 600만원선. 실평수 100평짜리 사무실을 임대하려면 월세 외에도 7, 8억원을 보증금으로 걸어야 할 판이다.

큰사람컴퓨터(주) 이영상(32)사장은 '논현동의 사무실을 테헤란로로 옮기기 위해 임대료를 알아봤으나 예전보다 2배이상 올랐다'며 '이나마 대로변엔 아예 빈 사무실이 없는 형편'이라고 털어놨다.

첨단 벤처의 연구 특성상 밤새 불밝힌 건물도 흔하다. 대구출신으로 4개월전 테헤란로에 입성한 (주)나라비전의 한이식(36)사장은 '밤샘 직원을 위해 2층침대 4개를 마련해뒀으나 매일 모자란다'며 '테헤란로에선 사장이 직원 건강을 위해 헬스클럽 회원권을 건네주는 것이 관례'라고 했다. '인터넷 청년갑부'들의 등장으로 여의도 증권가의 룸살롱까지 테헤란로로 몰려드는가 하면 돈 좀 벌었다고 소문난 벤처기업인 사무실엔 사장과 별 연고도 없는 이들까지 전화를 해 투자제의를 하는 웃지못할 일마저 생겨나고 있다. 한 벤처기업인(37)은 '최근 '잘나가는' 한 벤처 사장의 경우 수년전 만났던 미팅파트너들까지 투자를 하겠다고 전화공세를 펼치는 바람에 피해다니는 형편'이라고 했다.

▨고개드는 거품론

거품론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아이디어와 신기술 하나만을 믿고 창업한 벤처기업들에 대한 투자가 지나치게 과열 양상을 띠고 있다는 것. 벤처캐피털이 고수익이란 '장밋빛 청사진'만을 믿고 투자하긴 하지만 인터넷 관련기업의 상당수는 아직껏 실제 영업을 통해 이익을 내지 못한 곳들이다. 기업 자체로는 적자투성이인데도 벤처 열풍 속에 거액의 '눈먼 자금'을 금융시장에서 조달, 자본이익을 실현하며 벤처기업의 본질을 망각하는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도 생겨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인터넷 인프라업체 (주)아이소프트의 이철호(39)사장은'위기대처능력이 떨어지는 벤처기업의 특성상 한번 삐끗하면 줄도산으로 이어져 오히려 벤처산업 자체를 위축시킬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테헤란로의 미래는

테헤란로가 앞으로 한국 벤처산업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임은 분명하다. 밀집된 업체들의 경쟁력이 기술개발 등 기업의 내재가치 확보로 이어져 정보통신·인터넷 시장의 몸집을 불려나갈 것 또한 자명하다.

서울지방중소기업청 양재·포이 벤처기업지원센터 최정헌(42)소장은'테헤란로에 인접한 양재·포이지역 벤처기업들이 하드웨어 중심이라면 테헤란로 일대는 소프트웨어·인터넷 관련 벤처들로 특화돼 있다'며'정부의 전면 지원이 보장된데다 이미 벤처기업간 네트워크 활동에 따른 시너지효과가 나타나고 있어 발전가능성은 무한하다'고 내다봤다.

'기회의 땅'테헤란로에 '21세기 세계 10대 지식정보강국'을 꿈꾸는 한국의 벤처들이 몰려오고 있다.

金辰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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