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종로 꼬마'의 인생 마감

입력 2000-02-19 14:27:00

일제하의 '주먹세계'는 비록 깡패 노릇을 하더라도 낭만을 알았고 때에 따라서는 나라 잃은 민족의 설움에 통곡할 줄 아는 최소한의 인간적 의리도 있었다. 그래서 영화 '장군의 아들'에 나오는 김두한을 우리는 종로파 깡패의 대부이상의 영웅으로 두번(3, 6대)씩이나 국회의원으로 선출했던 것이다.이에비해 해방이후 요즘의 주먹세계는 훨씬 냉혹하고 비인간적인 것처럼 보인다. 과거의 깡패들이 자기들의 관할구역에서 얼마씩을 거두어 들인 돈으로 술 추렴이나 하는 목가적(?) 삶을 누린데 비해 광복후의 폭력 조직은 정치세력과 손을 잡아 특정집단의 하수인 노릇을 하기에 영일이 없었다. 더구나 최근들어 호남파가 새로 부상하면서 폭력조직은 과거와는 달리 기업화, 광역화 됐고 돈이나 이권을 챙기기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범죄집단화 했다는 것이다. 18일 타계한 일제 때 주먹이었던 '종로 꼬마' 이상욱(李相旭)씨가 자신의 시신을 의학도 실습용으로 기증하면서 "이것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보여줄 수 있는 나의 의리"라고 말한 것은 우리에게 여운을 남기는 대목이다. 그는 "의리를 지키며 남을 돕는 것은 김두한과 내가 평생을 지키기로 한 약속"이라면서 시신기증을 극구 만류하는 아들 이강산(46.프로복싱한국챔피언)씨에게 "죽은 뒤 없어지느니 세상에 무엇인가 베풀고 떠나겠다"고 다짐했다는 것. 죽은 이씨는 한창시절 '종로파'보스 김두한의 오른팔로 그의 장기인 중국무술과 박치기에는 당시 난다 긴다하는 주먹들도 움쭉을 못할 정도의 고수-. 60년대 이후 마음을 잡고 사업에 정진, 돈도 제법 벌었지만 찾아오는 후배들을 챙겨주느라 항상 쪼들리며 살았다는 것이다. 어쨌든 82년간의 파란만장했던 그의 주먹인생을 여기서 새삼스레 필요이상으로 미화시킬 필요가 없음을 우리는 잘안다. 그러나 어쩐지 요즘 의리 버리기를 밥먹듯 하는 소위 '유력인사'들의 행보를 보면서 '종로 꼬마'의 투박하지만 진솔한 인생행로가 연상, 착잡한 심경을 가눌길 없음을 고백치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김찬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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