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학년도 대학입시가 거의 마무리됐다. 입시 결과 가운데 흥미로운 건 대구지역 고교별 서울대 합격자수. 물론 서울대병은 망국병으로 불릴 정도이니 서울대에 많이 보내는게 꼭 최선은 아니다. 교육적이지도 않다. 그러나 어찌됐든 결과는 살펴볼 만하다.
올해 대구 수험생 가운데 서울대 합격자는 모두 459명. 정원의 10%에 육박하니 타시도와 비교하면 엄청난 숫자다. 대구의 일반계 고교는 51개. 이 가운데 20명 이상 서울대에 진학시킨 고교는 5개로 여기서만 모두 120여명이 합격했다. 특이한 것은 이들 5개 학교가 사립이라는 점. 예년에도 결과는 비슷했다.
왜 그럴까. 대구의 고교배정은 철저하게 컴퓨터 추첨으로 이루어진다. 이는 공립이든 사립이든 고교 신입생의 수준이나 학력에는 큰 차이가 없다는 뜻. 그런데 일반계 고교의 종착점인 대학입시 결과에서는 왜 이런 차이가 나는 것일까. 우리 학교는 꼭 서울대가 아니라도 의대나 한의대, 기타 명문대에 진학시킨 숫자가 많다고 항변할 수도 있겠지만 고교간 학력격차는 객관적으로 나타난다. 공사립간 격차 역시 엄연한 현실이다.
그 책임을 꼭 교사에게만 물을 수는 없다. 하지만 흥미로운 것은 교사에서도 마찬가지다. 공립교사가 되기 위한 임용시험은 '고시'라 불릴 정도로 경쟁이 치열하다. 임용시험을 치르지 않은 사립학교 교사들과 비교하면 일단 출발점에서는 비교우위가 뚜렷한 셈이다. 그런데 공립고 교사들이 가르친 학생들의 대학 진학 결과가 왜 사립고보다 우위에 서지 못하는 것일까.
한 교사의 지적. "학교간 학력격차는 비단 공사립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사립간에도 우열이 뚜렷하죠. 신규임용 후 세월이 흐르면서 교사가 어떻게 변해가는지 돌이켜봐야 합니다. 공립 5년이면 승진만 쳐다보게 되고 사립 5년이면 자포자기한다는 우스개도 있죠. 교사들이 처음 교단에 설 때의 열정을 왜 잃어가는지, 대책은 없는지 모두가 생각해봐야 할 때입니다"
이야기를 바꿔보자. 공사립 학력격차보다 더 심각한 '교실붕괴'가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니까. 교실붕괴의 원인에 대해서는 학부모와 학생, 사회적 여건 등에 대한 다양한 지적이 있지만 교사 역시 그 '원인'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와 관련해 몇몇 교사와 인터뷰한 결과 의미심장한 명제가 도출됐다. 교사는 광대와 광부와 예술가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
초중등 교사가 갖추어야할 덕목 가운데 하나는 피교육자가 지루하지 않게 수업에 몰두할 수 있는 교수법을 개발해야 한다는 점이다. TV, 사이버 공간 등 수도 없는 오락 프로그램이 널려 있는 요즘 아이들에게서 공부에 대한 관심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교사가 끊임없이 학생을 끌어들이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 고교 교사의 얘기. "EBS에서 방송하는 김용옥씨의 노자강의가 인기를 끄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독특한 강의기법이라고 봅니다. 강의내용의 난이도나 옳고 그름에 관계없이 수강자들을 집중하게 만드는 김씨의 강의는 교사들이 눈여겨볼 부분입니다. 광대를 방불케 하는 목소리와 몸짓, 표정이지만 진지함이 배어있는 강의, 과연 교사들 가운데 그처럼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물론 공부는 학생이 하는 것이다. 그러나 교사들에게도 광부의 피땀과 예술가적 감각이 필요하다. 원광석을 찾아내고 땀흘려 캐내는 일, 이것을 예술가적 영감과 감각으로 갈고 다듬어 작품으로 만들어내는 일, 학생들의 공부보다 훨씬 더한 노력이 요구되는 것이다.
한 50대 초등교사의 얘기. "교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욕심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아이들에게 더 많은 것을 더 잘 가르치겠다는 욕심, 잘 하는 아이를 더 잘하게 못하는 아이는 빨리 따라오게 만들겠다는 욕심이 필요하다는 거죠. 경제여건이나 사회적 분위기가 교사들을 어렵게 만들고 있지만 더 큰 문제는 욕심을 자꾸 잃어간다는 사실입니다"
시험을 보자. 학생들에게는 배운 결과를 검증하는 기회가 되지만 교사들에게는 자신이 가르친 데 대한 결과를 되짚어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학생들 사이에는 '학원 가면 90점, 안 가면 70점'이란 공식이 공공연하다. 시험 전 학원에서 나눠주는 예상문제지에서 어김없이 시험문제의 절반 이상이 출제되기 때문이다. 학원들이 족집게가 되는 방법은 간단하다. 지난 몇년 동안의 해당 학교 기출문제와 참고서만 모아두면 십중팔구 그 범위에서 출제된다. 이로 인해 지난해 재시험을 치르는 소동이 대구서만 두 번이나 빚어졌다.
교사들도 이같은 사실을 뻔히 알고 있지만 대책이 마땅찮다. 수업과 교과연구 외에 이런저런 잡무에 시달리다 보면 새로운 유형의 문제 출제는커녕 기출 문제 범위를 벗어나기조차 쉽지 않다고 하소연한다. 내신성적이 중요하다 보니 일정 수준의 평균 점수를 내기 위해 문제를 미리 가르쳐 주거나 교과서 그대로 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쉬운 시험, 뻔한 시험은 결국 학부모들의 사교육비 부담으로 이어진다. 학생들에게는 "학교서 대충 놀고 학원서만 열심히 하면 된다"는 생각을 심어줘 교실붕괴를 가속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지난해 12월 천리안 교사동호회에 올라온 한 교사의 얘기는 곱씹어볼 만하다. "난 시험문제 출제하는 작업이 재미있다. 내가 가르친 아이들이 답을 잘 맞출까. 날 흥분되게 한다. 문제 은행에서 문제를 뽑아서 쉽게 출제 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때가 있다. 일은 많고 시간은 없을 때다. 시험은 가르친 사람이 내야한다. 내가 진짜 출제해 보고픈 문제는 기존의 문제집에서 볼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답답할 때가 많다. 유인물 만들어서 시험정보(?)를 미리 흘려야 하고, 매로 압력을 넣어야 할 때가 많다. 시험으로 더 이상 스트레스 받는 교사나 학생이 없었으면 한다"
교사는 성직이라고 한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교사들에게 사회경제적 배려 없이 무조건 광대나 광부, 예술가가 되기를 요구하는 것은 무리다. 정부 차원의 사기 진작책, 실효성 있는 대책이 절실하다. 극소수 교사의 비리에 대한 여론의 질책도 시각이 바뀌어야 한다.
한 초등교사는 목소리를 높였다. "촌지 문제만 나오면 세상이 시끄러운데 촌지 받아서 부자 됐다는 교사 이야기 들어본 적 있습니까. 수천만원 챙기는 공무원이나 업자, 수억원을 잘도 삼키는 정치인들은 괜찮고 교사는 5만원, 10만원만 받아도 온갖 비난이 쏟아지지 않습니까" 그는 명절이나 학년말이면 꼭 자녀들에게 인삼 한 통이라도 직접 선생님께 갖다 드리게 한다고 했다. 자신의 능력에 맞게 고마움을 표시하는 것도 자녀교육이고, 스스로도 고마움의 선물을 떳떳이 받을 수 있는 교사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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