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

입력 2000-02-03 14:09:00

◆철도원

후루하타 야스오 감독의 '철도원'은 잃어버린 기억으로의 여행을 눈과 기차로 풀어낸 가슴 따뜻해지는 영화다.

하얀 눈으로 뒤덮인 시골 종착역 호로마이. 평생 역을 떠나본 적이 없는 사토(다카구라 겐)는 정년퇴직을 앞두고 깊은 상념에 빠져 있다. 그가 내내 안고 살아온 슬픔은 눈덮인 호로마이역에 태어난 지 두달된 딸과 아내를 묻은 것이다.

아이가 열병에 걸려 병원에 간 날도 그는 역을 지키다 싸늘하게 죽어 돌아온 아이를 맞았고, 아내가 세상을 떠나던 순간에도 역을 떠나지 않았다.

퇴임을 앞둔 새해 어느날 밤. 낯선 여자 아이 하나가 찾아온다. 인형을 안고 천진스레 웃으며 철길을 바라보는 소녀는 처음부터 사토를 알고 있었다는 듯 반갑게 인사를 건네 오는데....

'철도원'은 눈물샘을 자극하는 영화다. 딸의 혼령을 만난 사토가 역이 폐쇄된다는 소식과 함께 플랫폼의 눈 속에 춥고 쓸쓸했던 날들의 회한을 가슴에 묻고 세상을 떠나는 장면이 특히 인상적이다. 일본 '국민배우' 다카구라 겐의 연기도 일품이고, '마지막 황제'로 아카데미 작곡상을 받았던 사카모토 류이치의 음악도 애절하다. 전체 관람가. (3일 씨네아시아 1관 개봉)

◆반칙왕

주식으로 떼돈 번 수십억대 신흥부자, 억대 '귀족 샐러리맨'이 더욱 상대적 빈곤감을 느끼게 하는 요즘. 샐러리맨 치고 변신을 꿈꾸지 않는 이가 있을까.

'반칙왕'은 평범한 샐러리맨이 레슬러로 변신을 꿈꾸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어눌하고 소심한 은행원 임대호(송강호)는 하루 걸러 지각하고 실적도 저조해 늘 상사에게 욕먹는다. 어느 날 찾아간 장칠삼 프로레슬링체육관에서 '반칙왕' 울트라 타이거마스크의 사진을 보고 흥분해 레슬러가 되기로 작정한다.

레슬링 고수 유비호(김수로)와의 시합에 나설 반칙 선수를 구하던 장관장은 대호를 받아들인다. 밤이면 반칙 레슬러로 탈바꿈하는 대호는 활기를 되찾아가고, 마침내 유비호와의 혈투를 벌인다.

늘 상사로부터 욕먹고 헤드록(목조르기)까지 당하던 대호가 "여기서만큼은 내가 왕이다. 링 위에서 만큼은 누가 뭐래도 내가 왕이다"라며 내뱉는 독백은 샐러리맨의 억눌린 감정을 때리는 말이다. 지리하고 반복되는 일상과 이제는 한물간 프로레슬링의 세계가 맞물려 쓴 웃음과 폭소를 함께 선사한다. 조연들의 감초연기도 돋보이고, 할리우드에서 임대한 초고속 카메라의 촬영으로 레슬링 액션을 유려하게 담고 있다. '조용한 가족'의 김지운 감독작. 12세 관람가. (4일 중앙시네마1관, 제일1관 개봉)

◆비치

'타이타닉'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출연한다는 것으로 벌써 화제를 모으고 있는 작품이다. '쉘로우 그레이브'의 대니 보일과 콤비를 맞추었다.

낯선 장소에서 새로운 체험을 은근히 기대하는 배낭족 리처드(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타이 방콕의 어느 지저분한 호텔에 여장을 푼다. 옆방 투숙객 대피(로버트 칼라일)는 약에 절은 목소리로 실재하는 낙원의 이야기를 전해준다. 이튿날 그 섬의 지도를 남긴 채 손목을 그은 시체로 발견된다.

모험에 목마른 리처드는 같은 숙소에 묵은 프랑스인 커플 프랑수아즈(비르지니 르도엔)와 에티엔(기욤 카네)을 설득해 섬을 찾아나선다. 파도와 무장경비를 헤치고 섬에 도착한 비밀 해변에는 유토피아를 꿈꾸는 수십명의 남녀가 살(틸다 스윈튼)이라는 여인의 지휘아래 살고 있다.

리처드는 행복한 시간을 보내지만, 또다른 여행자들이 해변에 나타나고, 늘어나는 외부인 때문에 대마초 불법 재배에 타격이 올 것을 겁낸 원주민들이 그들을 사살하면서 낙원은 추방의 날을 맞는다. 18세 관람가. (4일 아카데미극장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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