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속의 봉급쟁이-2)계약·일용직

입력 2000-01-28 15: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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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날이면 울화가 치밀지만 처자식 생각하면 어쩔수 없어요"

대구 달성공단내 자동차 부품업체에서 일하는 일용직 장모(42)씨의 월급은 90만원. 같은 생산 라인에서 일하는 다른 직원보다 30만~40만원 적다.

"일용직이란 처지가 '노비문서'와 같습니다. 뼈빠지게 일하는데도 언제 밥줄이 떨어질지 몰라 눈치살피는게 하루 일과죠"

'저임금'을 강요받는 일용직 근로자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같은 공단내 또다른 자동차 부품업체의 근로자수는 400명. 이중 100명이 일용직이다. 이들 대다수가 지난해 이후 채용됐다. 일당은 2만원. 따라서 매일 4~5시간의 잔업을 해봐야 받는 월급은 70만~80만원선에 불과하다.

일용직이 늘면서 정식 직원들의 근로 환경도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직원 박모(36)씨는 "일용직이 늘면 회사는 손쉽게 임금을 줄이고 노조활동도 약화시킬수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 실제 IMF를 탈출해 흑자로 돌아섰지만 상여금과 수당을 계속 깎으려 하고 있다는 것.

촉탁직 또는 계약직도 마찬가지.

한국노동연구원은 최근 작년말 기준 비정규직 비율이 절반을 넘어서 53%에 달했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신규 채용 인력의 84%가 비정규직 형태였으며 이들의 임금 수준은 정규직의 50%에 불과하다는 것. 중소기업 비율이 99.4%나 되는 대구의 경우 비정규직 비율은 휠씬 더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

단순 노무직은 물론이고 일반 사무직과 금융, 의료계 등 전 업종에 걸쳐 비정규직 채용이 보편화되고 있다.

문제는 불안한 고용구조를 임금 삭감의 수단으로 악용하는 사업주가 늘고 있다는 점.

지난해 7월 D자동차 회사의 판매사원으로 입사한 김모(29)씨. 6개월 수습뒤 정식 직원으로 발령나는 조건으로 입사했지만 이달초 '해고 통지서'를 받았다.

"계약직으로 남든지 나가라는 거예요. 일반직은 매달 100만원의 기본적인 월급이 나오지만 계약직이 되면 차 판매 수당을 빼고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출근 투쟁을 벌이고 있는 김씨는 "결국 차를 팔아먹기 위해 세상 물정 모르는 사회초년생을 이용한 경우"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계약직 전환을 강요받고 있는 입사 3년째인 정모(33)씨는 "우리같은 영업직은 계약직이 되면 그 순간 날품팔이로 전락한다"며 "말이 좋아 계약직이지 고용보험이나 의료보험등 최소한의 근로 혜택조차 받을수 없다"고 밝혔다.

몇차례 노사 분규를 빚었던 지역 ㄱ종합병원의 경우 98년 이후 신규 임용자의 90% 이상을 계약직으로 뽑고 있다.

지난 98년 7월 파견근로제가 법제화된 이후 난립하고 있는 '인력 공급업체'도 근로조건 악화에 한 몫을 하고 있다. 수십~수백명의 파견근로자를 거느린 업체가 대구에만 무려 50여개.

한 인력공급업체 관계자는 "일부 업체들은 무허가 영업을 하면서 의료보험 등 4대 보험도 들어주지 않고 자신들이 파견한 근로자 임금의 40%까지 수수료로 받고 있다"고 밝혔다.

민주노총 대구본부 정우달 부의장은 "현재의 추세라면 정부가 주장하는 노동시장의 유연성 보다는 근로 조건과 고용 환경의 악화로 노동생산성을 떨어뜨려 전체 경제 흐름만 왜곡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비정규직은 '잠시 스쳐가는 직장'에 애정을 가질리 없고, 정규직은 '언제 밀려날지 몰라' 불안에 떠는 악순환만 계속되는 현실이다.

-李宰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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