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서상호 논설주간

입력 2000-01-27 14:28:00

총선시민연대 사무실에는 "시민의 힘이 세상을 바꾼다"라는 캐치프레이즈가 걸려 있다고 한다. 관(官)의 시대에서 민(民)의 시대로 바뀐 시대의 흐름에도 맞고 시민들의 지지 열기를 봐서도 맞는 말이다.

시대의 흐름

그러나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있고 또 순풍이 있으면 역풍이 있듯이 그렇게 순리대로만 흐를 것 같지는 않다. 총선연대의 공천후보반대인사 발표에 자민련의 반발도 문제지만 그보다는 중앙일보 여론조사에서 공천반대 명단발표의 '음모설'에 동의하는 비율이 30%나 된다는 것에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정치개혁에 대한 국민적 지지가 고조되어 있는 시점에서 나온 수치여서 그 심각성을 가벼이 볼 일이 아닌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인천남동구청장 선거에서 충청유권자의 65%가 야당 지지로 돌아서는 민심의 반란이 일어났다. 축구협회 임원들도 반발하고 나섰다.

커지는 의구심들

아니 땐 굴뚝에 난 연기 일까. 아니면 땐 굴뚝에 난 연기 일까. 그것은 아무도 모른다. 자민련에서는 "커넥션에 대한 증거도 있다"고 큰소리 치지만 그렇게 확실한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번 발표를 여당도 야당도 정치에 이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당은 대통령까지 나서 실증법 위반을 찬양하면서 시민단체의 낙천·낙선운동을 지지했다. '배밭에 가서 갓끈을 고쳐 맨 것이다'.

특히 자민련은 밟힐수록 충청표 획득에는 유리하다는 전략을 세워 놓고 있는 것 같다. 홍위병론에다 명단배후에 대한 국정조사론까지 들고 나오며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자민련의 반발은 '후유증이 아니고 그 자체가 작전'이라는 고감도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미 인천 남동구청장 선거에서 확인된 것이 아닌가. 지역주의의 벽이 얼마나 두꺼운 가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 사례이다. 야당 역시 '권력으로부터 압박받는 야당'이라는 이미지를 심으려 하고 있다. 역사에 달빛을 쬐면 신화가 되지만 시민운동에 권력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면 음모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이것이 진실이 아닐까. 진실과는 상관 없이 그렇게 비쳐진다는 의미이다.사실 여당은 태생적으로 시민단체와 친할 수밖에 없었다. 민주화 투쟁도 같이 했다. 그래서 보안법 등에서 정서적으로 맥을 같이 하는 분위기인 것도 사실이다. 또한 전 청와대정책기획수석이 분석 했듯이 "여소야대의 정국에서 정권이 기댈 곳은 시민단체 뿐"이라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 이러한 정황들이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설(說)에 설득력을 더해주고 있는 것이다. 사실 국민의 정부는 출발때부터 정부·시장·시민사회라는 권력의 3분체제를 구상했다. 또 2000년 대통령의 신년사에서도 이 말이 들어가 있다. 이를 청와대 관계자도 "매우 의미있는 대목이다"라고 증언해 주었다.

그리고 음모론이 고개를 드는 이유중에는 경실련이나 총선시민연대가 각각 발표한 공천반대인사에 몇가지 하자가 있다든지 국민은 보수적인데 반해 대부분의 시민단체들은 진보적이라든지 또 시민운동을 하다가 정계 또는 관계로 진출하는 사람이 많아 그 순수성을 의심받고 있는 점 등이 있다고 하겠다.

시민단체의 할일은

시민운동으로 출발했다가 기성 정당의 실패로 정계진출에 성공한 독일의 녹색당도 처음에는 기세를 올렸으나 지금은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을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를 감안해서라도 시민운동은 정보제공의 낙천운동에 그쳐야지 낙선운동으로까지 간다면 여러 문제를 야기시킬 것 같다. 우선은 낙선운동을 하다보면 정치개입이라는 비판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낙선운동이 실패할 경우 시민단체의 입장은 어떻게 되는 지도 고려해야 할 것 같다. 게다가 영·호남에서는 낙선운동이 별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는 판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이번 시민운동 자체가 정치개혁을 위한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낙선 낙천운동과 같은 정치인 교체에 머물 것이 아니라 낡은 정치의 틀갈이도 시도해야 할 것이다. 아무리 새 피를 넣어도 부대가 헌 부대면 새 피는 곧 헌 피가 될 뿐이기 때문이다. 3김정치의 유산인 보스정치, 패거리정치, 지역주의정치, 인치(人治)를 그냥 놔두고는 정치개혁이 안된다. 모처럼 얻은 국민적 지지를 잘 살리기 위해서라도 정치개혁까지 갈 필요가 있지 않을까.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