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박경리씨 시집 '우리들의 시간'

입력 2000-01-26 14:24:00

작가 박경리씨가 그동안 문예지에 발표한 시들과 90년대에 쓴 시들을 한데 모아 시집으로 묶어 냈다.

박경리 시선집이라 할 수 있는 '우리들의 시간'(나남출판 펴냄)은 일반적인 시의 어법과 경향을 찾기 보다 솔직하고 소박한 언어로 빚은 삶의 기록으로 읽으면 글의 향기가 훨씬 오래 남는다. 그래서 평론가들은 시의 형식을 빌려 낸 원로 소설가의 진솔한 삶의 고백에 귀를 기울여보라고 충고한다.

그의 시에는 '고추밭에 물 주고/배추밭에 물 주고/떨어진 살구 몇 알/치마폭에 주워담아/부엌으로 들어간다'('아침'의 일부)에서처럼 그의 일상에 접근해보는 즐거움이 있다. 반면 하루하루가 똑같아서 견디기가 힘든 일상에 대해 걱정하는 목소리도 읽을 수 있다. '커피 한 잔 마시고/벽에 기대어 조간 보는데/조싹조싹 잠이 온다/아아 내 조반은 누구 하지?/해는 중천에 떴고/달콤한 잠이 온다'를 읽으면 홀로 인생을 꾸려가는 고독함의 정서가 전해져 온다.

또한 이 시집에는 세계와 우주에 대한 경외감 속에 한 귀퉁이를 잡고 있는 자아의 왜소함이나 일상에 대한 기억들, 자신과 생활주변에 대한 유머러스한 관찰들이 녹아 있다.

'토인비의 역사연구를 읽다가/재봉틀 앞에서 바느질을 하다가/묵은 유행가책 꺼내어 노래를 불러본다//무한한 것은 저만큼 서 있었고/생활은 내 곁에 어질러져 있었고/장난기도 좀 부려 보았는데/갑자기 자신에 대한 연민/인간에 대한 연민 때문에/웃었다'('지샌 밤'의 일부).

시인의 노래는 문명과 세태를 비판하는 꾸짖음으로 확대된다. 병들어가는 자연에 대해 '쇠붙이는 물리치고 합리주의의 사슬을 풀자'고 외친다. 속물로 변해가는 인간들을 향해 "그렇게들 하지마라"고 나무란다.

徐琮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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