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민련 '공동정권 철수' 최후의 카드 꺼내나

입력 2000-01-25 14:18:00

시민단체의 공천반대 명단 발표가 있은 24일 자민련은 곧바로 배후 음모론을 제기했다. 민주당의 내각제 강령 배제에 이어 김종필 명예총재를 공천 반대자 명단에 포함시킨 것 등은 일련의 시나리오에 의해 진행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날 열린 간부회의에서도 참석자들은 "시민단체의 명단 발표는 명백한 자민련 붕괴 시나리오"라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이같은 음모론은 김현욱 사무총장이 직접 나서 제기했다. 김 총장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시민단체는 배후세력의 치밀한 각본에 의해 조종되고 있다"며 배후로 청와대 김성재 정책기획수석과 민주당 이재정 정책위의장 등을 지목했다.

김 총장은 "참여연대 출신인 김성재 정책기획수석이 인터뷰 등을 통해 분위기를 조성했고 명단작성 장소가 이재정 정책위의장이 소속된 성공회의 부속건물이라는 점도 의구심을 갖게 한다"고 지적했다.

명단에 포함된 김종호 부총재도 "시민단체의 정체와 배후를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민련의 이같은 인식은 최근 선관위와 검찰의 움직임에서도 비롯됐다. 최근 경실련의 1차 공천 부적격자 발표 후 선거법 위반이라고 주장했던 선관위가 대통령 발언 후 법 개정을 주도하고 나섰고 검찰도 뒷짐을 지고 있는 점이 석연치 않다는 반응이다. 이규양 부대변인은 "선관위와 검찰의 움직임을 볼때 시민단체와 권력핵심이 연계돼 돌아가고 있다는 의혹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이같은 자민련의 격앙된 분위기는 공동정권 철수론으로 이어지고 있다. 청와대와 민주당이 자민련 죽이기에 나서는 마당에 공동정권을 유지할 명분이 없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주중 갖기로 했던 DJP회동을 거부할 움직임이다. 지난 주말 한광옥 대통령비서실장의 신당동 자택 방문으로 관계를 회복하는듯 했던 양자가 시민단체 명단 발표를 계기로 급속도로 악화되고 있는 것이다. 김 명예총재의 한 측근은 "이번 선거를 여야 대결구도가 아닌 운동권 세력과 보수 안정희구 세력간의 대결로 몰아가려는 의도가 엿보인다"며 "자민련은 보수와 진보의 양대 축으로 국민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도 서슴지 않았다. 자민련 청년위원회는 이날 시민단체에 역으로 이의를 제기하는 성명을 통해 "새천년 민주당 김대중 총재는 본인 스스로 20억의 정치자금 수수를 인정했는데도 정치퇴출자 명단에서 빠진 이유는 무엇인가"라면서 공세를 펼쳤다.

그러나 이같은 공세의 이면에는 자민련의 치밀한 계산도 깔려 있는 것 같다. 시민단체와 권력핵심의 연계의혹을 제기하면 할수록 자민련의 총선 탈출구 마련이 손쉬울 것이라는 분석이다. 또 현정권으로부터 핍박받는 인상을 풍기면서 보수세력 결집에 나설 경우 총선도약도 난망한 것만은 아니다는 판단도 하고 있는 것 같다. 李相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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