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시공-감리업체 뒤얽혀 '혼선'

입력 2000-01-25 00:00:00

"시공사가 10개나 되고 공사단계마다 하청업자를 새로 선정하는 지하철 건설관리 시스템은 한국에만 있는 제도로 사고 발생 등 위기상황 대처에 큰 문제점으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토목.건축 전문가들은 대구지하철 2호선 공사가 발주처, 원도급, 하도급 등 계약 단계에서부터 설계, 시공 등 전반에 걸친 과다한 공동도급, 설계-시공-감리업체의 혼재에 따른 이.삼중의 복잡한 관리체계, 발주처의 감독권 부재 등으로 인해 철저한 관리.감독과 안전 대응을 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지하철 2호선은 구간마다 최소 5개에서 최대 10개 업체가 시공사로 선정돼 있다. 시공사가 많은 것은 공사능력과 공사실적이 높은 1군업체뿐 아니라 기술향상을 꾀하고 지역업체를 배려하는 차원에서 2, 3군 업체도 일정 비율로 참여시켰기 때문.

이에 따라 시공사 중 지분이 가장 많은 주간사와 다른 원도급업체들이 공사현장을 함께 관리.감독하는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 현장소장은 ㄱ업체, 공사과장은 ㄴ업체, 시험과장은 ㄷ업체가 맡고, 한 공사장에 5~10개에 이르는 업체의 직원들이 일을 하고 있는 공사현장 구조에서는 일원화된 관리가 어렵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지난 22일 붕괴사고가 난 2-8공구도 주간사인 삼성물산과 화성산업이 3구간으로 나눠 공사를 벌이다 지난해 삼성물산이 전구간 공사를 총괄하는 바람에 업무승계 과정에서 혼선을 낳은 것으로 알려졌다.

설계.시공.감리를 한 업체가 중복으로 맡는 것도 문제의 심각성을 더한다. 현재 지하철 2호선 15개 공구중 1-4공구, 11-12공구의 경우 한 업체가 시공과 설계를 같이 맡고 있으며 나머지 구간은 감리업체가 설계까지 맡아 철저한 검증작업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한 업체가 설계와 시공을 같이 하거나 설계.감리를 같이 맡을 경우 공사과정에서 설계상 문제가 드러나더라도 이를 바로잡을 가능성이 낮다고 지적한다. 지하철공사장 붕괴구간인 2-8공구 환기구 구간에서 굴착과정의 공법상 문제를 제기한 업체는 설계.감리업체인 동부엔지니어링이 아니라 시공사였던 점도 설계.감리의 허점을 드러낸 사례이다.

시공업체 관계자는 "설계.감리.시공업체를 분리하지 않는 것은 비용을 줄이기 위한 업계의 관행으로 문제가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지하철건설본부의 관리.감독권 부재도 공사 부실을 방치하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공사현장 방문을 자제하고 민원.보상업무 외 일체의 공사 관여를 하지 못하도록 한 건설교통부 지침이 내려진 이후 지하철건설본부의 역할은 예산편성과 집행, 유관기관 협의 수준에 그치게 됐다. 이 때문에 감리업체나 시공사가 설계 부실을 묵인하더라도 이를 제대로 견제하고 감시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金炳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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