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지난 17일 개악 선거법을 재협상키로 일단 합의했지만 그 전도는 난항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정치권 스스로의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격앙된 비난여론에 떠밀린데 따른 '울며 겨자먹기'식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임시국회 폐회일인 18일 중 타결되기는 사실상 어렵고 임시회 재소집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물론 "재협상을 한다"는 원론에는 여야가 한 목소리지만 구체적인 논의 대상을 둘러싸곤 벌써부터 팽팽한 힘겨루기를 벌이고 있다. 민심은 뒷전으로 한 채 당리당략에만 골몰하고 있는 것이다. 즉, 합의 내용들 중 상대 측이 요구해 왔던 쟁점들을 최대 문제점으로 부각시키면서 우선적으로 다뤄야 한다는 양상이다. 그 이면엔 재협상을 초래한 원인이 상대 측에 있다는 책임전가 전술까지 깔려 있는 셈이다. 결국 의원 정수 축소 등 일반 국민들의 주된 관심사는 부차적인 것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는 처지다.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경우 일부 예외를 인정한 도·농 통합시의 선거구 존속 조항을 폐지하는 데 주력하겠다는 게 공식 입장이다. 박상천 국민회의총무가 "복합선거구 4개를 살린 것을 빼면 이번 선거법에서 개악이라고 할 부분이 없다"고 밝힌 데서도 드러나듯 야당이 무리하게 이를 요구했기 때문에 비난여론을 초래했다는 등의 책임론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이 17일 청와대에서 국민회의 당 3역 등과 논의한 뒤 발표한 재협상 6대 원칙 중에 이 문제와 함께 국고보조금을 동결시키기로 한 점도 대폭 증액에 대한 비난여론에 편승, 정치자금난에 내몰린 야당을 압박하기 위한 속셈으로도 분석된다.
반면 한나라당 측은 여권 주장의 핵심인 1인2표제와 석패율제 등 중복출마제의 백지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부영 총무는"민의를 왜곡시키는 등 국민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는 석패율제와 1인2표제의 도입문제부터 재검토해야 한다"고 맞섰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종전 합의를 전면 백지화, 원점에서 재출발할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원래 당 방침이 현행 선거법 고수였던 만큼 급할 게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여권 측이 상대적으로 몸이 달 수 밖에 없다. 현행 선거법을 개정하자는 문제를 제기한 측이 자신들이고 배경엔 현행대로 할 경우 총선에서 불리하다는 인식이 있었을 것이란 분석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여권은 재협상이 어려우면 현행대로 갈 수 있다고 공언은 하고 있지만 속마음은 편치 않으며 어떤 식으로든 개정해야 한다는 쪽으로 쏠릴 수밖에 없는 처지다.
이같은 상황을 감안할 경우 향후 협상 역시 여권 측의 1인2표제와 석패율제 등을 한나라당이 수용하는 대신 야당 측의 도·농통합시 예외 백지화를 보상할 다른 타협안을 모색하는 선에서 그칠 공산이 높다. 야당의 또 다른 요구안인 현행 선거구 존중원칙이 논의대상이 될 수 있다.
徐奉大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