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온 박하사탕 이창동 감독

입력 2000-01-15 14:02:00

처음부터 묻는 게 많았다. "느낌이 어땠느냐?""작품에 만족은 하느냐?""만족하면 몇 %나 하느냐?"

이창동(46) 감독은 한마디로 잘랐다. "핏덩이죠" 아차! 너무 흥분했구나. 지난해 10월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서 본 '박하사탕'의 여운이 아직 남았었나 보다. '박하사탕'의 이창동감독이 지난 11일 주연배우 설경구·문소리와 함께 대구를 찾았다.

'박하사탕'은 영호(설경구)라는 사내가 20년의 시간을 거슬러 가며 첫사랑의 순수를 찾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디테일한 묘사와 연기자들의 연기, 차분한 연출력으로 한국 리얼리즘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지난 1일 대구에서 개봉된 이후 입소문으로 차츰 관객이 늘어나고 있으나 인터뷰 당시(11일)는 소극장으로 밀려난 터라 이감독의 기분이 그다지 좋아보이지는 않았다.

"왜 하필 시간여행이냐?"고 물었다. 그것도 세기말이다 새천년이다 떠들썩한 1999년에. 이감독은 시간에 대한 균형감을 들었다. "우리는 과다하게 미래를 얘기합니다. 과거-현재-미래에 대한 균형감각을 잃은 거죠. 과거를 통해 미래를 보자는 의도도 있고…. 또 세기말은 10년전부터 계속된 것 아닙니까?"

'오발탄'이후 최고의 리얼리즘 작품이라는 찬사에 대해서는 "과장된 것"이라며 자신은 '오발탄'을 보지도 못했다면서 웃음을 지었다.

"'박하사탕'을 보여주고 싶었던 대상은 젊은이였다"며 "시간이 자기 것인 사람들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감독은 '현실적인 이유'로 그들이 좋아하는 스타를 쓰지 못했다. "20대와 40대를 소화할 수 있는 스타는 우리 영화계에서 한 둘 밖에 없는데 그들을 쓰지 못할 바에야 아예 신인으로 가자는 오기가 발동했죠"아예 단역까지 처음 보는 얼굴들로 가자는 의도. 이 감독의 '모험'은 성공했다. 극의 리얼리티가 살아난 것이다. "우리 배우들을 만난 것이 운이 좋았죠. 특히 설경구의 경우에는…. 오히려 나 자신이 대견스러울 정도였습니다"

이감독은 대구출신으로 소설가에서 영화감독으로 변신했다. 90년대 초 영화계에 뛰어들어 조연출을 거쳐 지난 97년 '초록물고기'로 데뷔한 늦깎이 감독.

소설과 영화의 차이에 대해서 "소설은 주관적인 매체고 영화는 극적이고 다이내믹하다"며 "시나리오를 창작해야 하고, 제작을 성사시켜야 하고, 흥행에 신경써야 하는 등 영화가 훨씬 피곤하고 힘들다"고 했다. 그럼에도 그는 "영화가 재미있다"고 했다. "'이야기꾼'으로 살았으니까 소설 작업이 영화에 도움도 많이 줬다"고 덧붙였다.

'작가주의'를 견지할 것이냐는 질문에 "대중과 떠나고 싶지는 않다"며 "대중의 마음을 진심으로 움직이고 싶다"고 했다. 영화 '거짓말'에 대중들의 호기심이 집중되는 것이 아쉬운 듯 "대중의 마음이 아직 안 움직인다"며 "아직은 짝사랑인 것 같다"며 말끝을 흐렸다.

이감독은 세번 째 작품을 준비중이다. "이번에도 '산다는 것이 뭔가'라는 질문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또 다시 실팍한 영화를 들고 "삶은 아름다운가?"라며 찾아올 그의 모습을 기다리는 것은 '박하사탕'의 관객이 느끼는 공통된 기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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