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고고학사상 최악의 발굴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이는 다름아닌 백제초기 왕성터로 확실해진 서울 송파구 풍납동 풍납토성을 발굴하고 있는 한신대 권오영 교수가 스스로 한 말이다.
그런데 어딘지 모르게 이 말은 지난 1971년에 있었던 충남 공주 무령왕릉 발굴을 연상시키고 있다.
널리 알려졌듯이 송산리 고분군 배수로 공사를 하던 중 실로 우연히 발견된 무령왕릉 발굴은 번갯불에 꽁볶아 먹듯이 하룻밤만에 해치웠다. 그것도 한밤중에.
최악의 발굴이라는 자탄이 결코 과장이 아닌 셈이다.
12일 한신대가 긴급 개최한 지도위원회에 참석한 학자들은 하나같이 거대한 석조구조물을 바닥에 드러낸 현장을 둘러보고는 우선 말문이 막혔다.
그들이 처음 내뱉은 말이라곤 "대단하군" 정도였다.
그러나 이것이 갖는 의미가 이토록 중요하고 완전발굴에 최소한 몇년이 걸릴 것이 분명한데도 발굴은 발굴단 스스로가 최악이라고 자탄할 만큼 엄동설한에 속전속결로 이뤄지고 있다.
발굴현장 사정을 잘 아는 한 고고학자는 "시간에 쫓기는 바람에 유적 발굴이 아니라 유물 긁어모은다고 할 정도로 정신없이 발굴이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은 우선 이곳이 아파트재건축 부지이기 때문.
발주를 한 재건축조합이나 시공을 맡은 건설회사는 애초에 발굴기간을 70일밖에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미 실제 발굴일수는 80일을 넘었다. 때문에 발굴단으로서는 재건축조합에 치이고 시공사 압력에 밀려 무리가 따르더라도 빠르게 발굴을 진행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국가를 비롯한 관계당국과 유권자 표가 중요한 정치인들은 물론이고 경부고속전철이 경주를 통과하는 것을 목숨걸고 막은 대다수 고고학자들도 백제 500년이 아파트에 깔리고 뭉개지는데도 나몰라라 뒷짐만 지고 있다.
또 국가기관도 아닌 사립대 박물관으로는 시공사와 조합원들의 압력을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이며 독자와 시청자를 의식한 언론도 "아파트 건축은 안된다"는 주장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고고학 사상 최대의 발굴이 될 수도 있는 풍납토성에서 최악의 발굴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