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마지막이라 일컬어지던 지난해. 선진국에나 출몰한다는 '교실 붕괴'의 악령이 우리 사회를 덮쳤다. 극소수 학교의 단편적인 현상을 침소봉대한다는 비판도 많았지만 20세기 말미를 우리는 '학생이 교사를 존경하지 않고 교사는 학생을 믿지 못하는 현실'을 한탄하며 보냈다. "원인은 무엇이고 대책은 없는가"라며 신문마다 기사를 쏟아냈고 TV는 밤새워 토론했다.
그러는 한편에서는 컴퓨터와 인터넷을 통한 사이버 교육의 위대함을 예찬하며 정보기술만이 다가올 세기를 살아갈 유일한 방편이라고 목청 높였다. 교사들은 교육정보화라는 억지춘향에 컴퓨터 앞에서 보초를 서고, 학생들은 게임방으로 내달렸다. 대학입시철이 되자 또한 예전처럼 80만명이 넘는 수험생들을 서울대부터 전문대까지 어떻게 일렬로 세우는지 관심이 몰렸다. 교사는 허둥지둥하고 수험생들은 이 대학 저 대학을 와르르 쫓아다녔다.
20세기 우리 교육의 엇갈린 단면이다. 21세기가 시작됐지만 '위기의 교육'을 둘러싼 역설적인 모습은 변함이 없다. 얼핏 보면 실타래처럼 꼬여 대안이 막막하지만 교육현장의 목소리들은 의외로 간명하다.
실업계고 한 교사는 다소 과대포장됐지만 교실 붕괴가 결코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며 '공동의 노력'을 촉구했다. "교실 붕괴는 단순히 학교 안의 현상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가정 붕괴, 신뢰 붕괴를 총체적으로 보여줍니다. 해법도 당연히 교사와 학생, 학부모, 사회 구성원 모두가 신뢰를 쌓아가는 과정 속에서 찾아야 합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믿음은 사회를 지탱하는 주요한 덕목으로 꼽혀왔다. 하지만 교육현장에서 신뢰는 이미 골동품이다. 교육정책 특히 입시제도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극에 달했다. 체벌하는 교사는 학생 신고로 경찰서에 끌려가고, 학부모에게 얻어맞고, 심지어 학생에게까지 폭행당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매년 경찰에 가출신고되는 중고생은 10만여명.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이 학교에서 퇴학당한 학생들이다. 가출이유로 학교가기 싫어서(40%) 부모와의 갈등(25%) 불량한 친구관계(25%) 등이 많은 데 비해 교사와의 갈등(3%)이 극히 적다는 한국청소년 선도회의 조사자료는 또다른 시사점을 던져 준다.
교실 붕괴가 단순히 교사-학생 간의 문제가 아니고 그 책임의 절반은 학부모의 몫이라는 지적이 유효함을 입증한다. 교실 붕괴의 책임이 온통 학교에만 있고 교육정책에만 있는 양 불평하던 학부모들도 이제는 반성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뜻이다.
교육당국-교사-학생-학부모의 연결고리가 풀려버린 것이 교실 붕괴의 주된 원인이라면 해결책도 믿음을 쌓는 데서부터 모색돼야 한다. 개개인이 한층 소외되고 개인화되는 디지털 시대에는 더욱 지켜야 할 덕목이 바로 믿음인 것이다.
그 책임은 모두에게 있지만 특히 교사들의 몫이 크다는 게 교육계 안팎의 공통된 목소리다. 교육의 주체이면서 가장 푸대접받고 소외된다는 불만도 일면 타당하지만 무너진 교실을 세우는 현실의 삽자루는 교사가 가장 먼저 쥐어야 한다는 것이다.
ㄷ초등 한 교사는 "결손가정의 자녀나 공부에 관심을 갖지 못하는 학생들을 학교에서조차 방치한다면 이들은 거리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며 "교사에 대한 존경심과 믿음은 교사들 스스로 되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 여교사는 눈물부터 글썽였다. "고교시절 공부를 못해 학급 평균점수나 까먹는다며 담임선생님에게 머리채를 휘어잡히기도 했습니다. 학교를 그만두고 싶은 마음 뿐이었는데 하교길에서 '너는 마음씨가 착하니 분명 잘 살 수 있을 것'이라며 어깨를 다독거려 준 또다른 선생님 덕분에 오늘의 내가 있게 됐습니다"
그 영향인지 교사가 된 뒤 그는 줄곧 말썽을 자주 일으키는 문제학생들을 모아 사물놀이와 레크리에이션을 가르치며 함께 토론하는 '문제아 전문가'가 됐다고 한다교육계에서 흔히 거론되는 인간성 찾기 교육이나 창의력 교육은 이처럼 결코 거창한 데 있는 것이 아니다. 따뜻한 말 한 마디가 한 사람의 생애를 좌우하는 결정적인 인성교육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학교를 일으키는 삽자루를 교사들에게만 맡겨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일그러진 20세기말의 모습을 깨고 학생들에게 제대로 된 공부를 시킬 수 있는 풍토를 만드는 일, 우리 모두의 노력이 필요한 때다.
金在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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