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란 과거 사실 그대로의 재현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라고 E.H 카는 말한 바 있다. 이 말은 역사는 현재 인간이 살아가는 삶에 도움이 되는 것이어야 한다는 '역사의 현재성'을 의미한다. 따라서 동일한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라도 그 해석은 시대에 따라 현실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인물에 대한 평가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지금까지는 '흥부전'의 등장 인물에 대해 일반적으로 흥부는 선한 인물, 놀부는 악덕한 인물로 이해하여 왔다. 그러나 사회가 다원화되고 개인이 추구하는 가치도 다원화된 현대 사회에서 흥부와 놀부에 대해 지금까지처럼 단순히 선한 인물, 악한 인물로의 이분법적인 해석이 설득력을 얻기는 어렵다.
흥부는 조선 후기 당시 농민들의 착취당하는 상황을 대변하는 불쌍한 인물로서 또한, 욕심 많은 형에 대해 우애를 다하는 선량한 인물로 인식되어져 왔다. 지주, 부농들의 횡포로 더더욱 살기 어려워져만 가는 소작농들의 삶과 장자 중심 사회에서 정당한 재산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다른 형제들의 삶을 보여주는, 부조리한 사회의 희생자이면서도 윤리적으로 충실한 인물의 역할을 맡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흥부는 허례허식을 중시하면서도 게으르고 무능력한 가난한 양반들의 허세적 도피자의 모습도 띠고 있다. 집을 짓는답시고 수수대 뺑대를 짊어지고 와서는 기지개를 켜면 양팔과 두 다리가 밖으로 나가고 일어나 앉으면 엉덩이가 밖으로 튀어나가는 집을 집이라고 짓고 사는 흥부의 모습에서, 관청에 매품을 팔러 가면서도 다 떨어져 구멍이 숭숭 뚫린 마고자와 두루마기를 두툼하게 걸치고 행차하는 모습에서 이러한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에 반해 놀부는 언제나 아우로부터 전 재산을 빼앗고 쌀 한 톨 도와주지 않는 못된 형으로 치부되어 왔다. 제사조차 접시에 엽전을 올려놓고 음식 대신이라며 지내고는 이웃에 조금도 나누어줄 줄 모르는 불효 자식에 자기 중심적인 인물로 그려졌다. 그러나 사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놀부와 같은 생활 태도를 조금이라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흥부처럼 버는 족족 다 써버리고 돈을 써야 할 때 안 써야 할 때 가리지 않고 낭비하는 사람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놀부가 부자가 된 까닭은 물론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것이 있었기도 하다. 그러나 흥부전에 그려져 있는 것처럼 아끼고 절약했기 때문이다. 절약과 절제가 몸에 배인 사람이라야 규모있는 경제 생활을 영위해야 하는 현대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적합한 인물형으로 거듭날 수 있는 것이다. 즉, 각박한 현실에서 자기의 삶을 스스로 책임지면서 비굴하게 뒤틀리지 않고 당당히 살아가기 위해서는 놀부와 같은 삶의 태도가 필요하다.
요컨대 흥부는 잔반임에도 불구하고 분수에 맞지 않는 허례허식을 벗지 못하는 무능력한 사회 부적응자이므로 부정적인 인물로, 놀부는 근검 절약하는 자본주의 사회형의 현실적인 인간이므로 긍정적인 인물로 해석 평가할 수 있다. 이처럼 사람의 모든 행동은 현실 상황에 대한 인식에 따라 달리 파악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 어떤 경우에도 특정 인물의 특정 행위에 대해 선입견을 가지고 속단하는 것은 다원화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바람직한 태도라 할 수 없다.
장 미 영.경명여고 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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