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시론-'權'이 아닌 '經'의 정치

입력 2000-01-14 14:49:00

조삼모사(朝三暮四)이야기를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송(宋)나라에 저공(狙公)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저(狙)란 원숭이를 뜻하므로 그 이름이 말하듯이 많은 원숭이를 기르고 있었다. 그는 원숭이에게 도토리를 아침에 네개, 저녁에 세개 조사모삼(朝四暮三)으로 나누어주고 있었다. 어느 날 생각해보니 원숭이들은 자고 일어나자마자 도토리를 네개 먹고, 하루 종일 뛰어 논 후인 저녁에는 3개 밖에 먹지 않아 원숭이들에게 아침에 세개 저녁에 네개의 조삼모사로 먹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하였다. 그러나 저공의 배려와는 달리 원숭이들이 매우 화를 내므로, 종전과 마찬가지로 조사모삼으로 주겠다고 했다. 그후 조삼모사는 합은 어차피 일곱개인데 그것도 모르는 원숭이의 어리석음을 희롱하는 말이 되었다.

이야기를 대구로 돌려, 정부는 수 차례에 걸쳐 위천에 첨단산업공단을 만들어 줄 것같이 공약을 해댔다. 그 말을 순진하게 들은 기업주들은 현재의 공장부지를 어떻게 처분할까, 새 공장에 입주하면 기계설비를 어떻게 바꿀까 하고 은행문턱을 뻔질나게 드나들었을 것이다. 심지어 약삭빠른 사람들은 위천 주변의 땅을 사들여 한몫 보려고 땅 투기도 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정부가 위천은 적합지가 아니라며 공단을 경기도 화성에 조성하겠다면, 공단이 한국 내에 있으면 되었지 어느 곳에 있는지가 문제이겠는가 할 수 있을까? 조삼모사의 현대경제학적인 해석은 "원숭이들은 어리석지 않았다"라는 것이다. 원숭이들은 조사모삼(朝四暮三)의 환경에 적응하고 있었으므로 새로운 정책의 충격에 빠져들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합리적기대이론(合理的期待理論)이라는 오늘날의 주류 경제학이 있다. 한 나라의 경제는 개개인의 사람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의에 바탕을 두고 서로 얽히면서 효율적인 조화를 이루는데, 믿지 못하는 관계는 효율적일 수 없다. 믿지 못하면 전화 한 통화로 끝날 일을 열 번도 더 찾아가게 하고 몇 번이나 다짐을 받고 매번 확인을 하게 한다. 그러다 약속이 뒤틀어지면 그 위에서 계획했던 모든 것이 모래성이 되는 것이다. 정부가변덕스러운 정책 변동이 나라의 경제를 효율적으로 돌아가게 할까? 합리적 기대이론은 정부가 최선의 정책을 찾기 위해 정책을 이래저래 바꾸느니, 차선의 정책일지라도 일관성 있게 운용하면 사람들이 앞날에 대한 기대를 하나 하나 실현해 나갈 수 있으므로 민심이 안정되고 경제가 효율적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한자어에 경제(經濟)라는 경(經)은 '묵직하다'라는 뜻을 갖고 있는 반면, 권력(權力)의 권(權)은 '가볍다'는 뜻을 갖고 있다. '이야기 중국사'라는 책은 무게 없는 권력이 묵직한 경제를 휘둘러 댈 때에는 경제가 파단이 나며 민란이 일어나 중국의 왕조가 반드시 망하였다고 기술하고 있다. 요즈음 한국사회는 정책실험을 하느라 정신이 없다. 한국은 5천년의 역사를 갖고 있지만 근대화과정에서 처져 뒤늦게 따라가느라 수 삼일에 한번씩 좋다는 정책을 발표한다. 한약을 짓는데 몸에 좋다는 약재들을 한꺼번에 다 먹으면 몸에 좋을까? 독약이 될 뿐이다. 약이 되려면 약재의 궁합이 맞고 섞는 비율이 맞아야 한다. 우리가 새 내각에 바라는 것은 권(權)이 아닌 경(經)에 바탕을 둔 묵직한 정치이다.

경북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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