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안에…전국 초중고 초고속 통신망 구축 완료…컴퓨터 실습실 설치, 인터넷 무료 사용, 교원용 PC 지급…. 교육정보화 종합대책으로 정부가 제시한 방안이다.
올 연말 쯤 각급 학교에는 그야말로 최적의 컴퓨터.인터넷 환경이 만들어지고 교육정보화가 착착 진행돼 정보강국으로 가는 장기적인 기반이 마련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정부의 계획이고 기대일 뿐이다. 물적 환경 면에서는 어느 정도 틀을 갖추겠지만 현실로 이어지기에는 크고작은 난관이 적지 않다. 정부대책이 나오자마자 교육계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들리고 있다. "교육과정, 운용, 소프트웨어 등의 문제는 버려두고 하드웨어만 그럴듯하게 갖춘다고 정보화가 이루어지느냐"는게 주된 지적이다.
▨교육정보화냐 정보화교육이냐
한 중학교 교사는 "이름은 교육정보화인데 정부의 추진방향을 보면 단순한 정보화교육에 불과한 느낌이다. 교육과 정보화 가운데 어느 것이 중요한지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정보화는 수단일 뿐 목적이 될 수 없으며 학교교육에서 정보화는 교육을 보조하고 효과를 높이는 매체로 활용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교사들에게 주어진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교육정보화에 대한 구호는 요란한데 교육용 소프트웨어는 미흡하기 짝이 없고 파워포인트나 멀티미디어 학습자료를 만들기에는 시간도 턱없이 부족해 교사들의 숨통을 죄고 있다. 컴퓨터나 인터넷을 활용한 수업을 기대하기에는 너무나 열악한 상황인 것이다.
물론 컴퓨터와 인터넷 보급이 급속도로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정보화교육 자체도 소홀히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당장 올해부터 시작되는 제7차 교육과정을 살펴보면 정부의 의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정보기술과목이 여전히 재량 선택교과로 편성돼 있는 것이다.
재량 선택교과란 학교 자체의 판단에 따라 교과에 편성할 수도 않을 수도 있는 과목이다. 따라서 고교 졸업 때까지 컴퓨터를 1시간도 배우지 않고 학업을 마치는 학생이 생길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초등학교의 경우 영어열기에 밀려 대부분 제외되고 있다. 전국에서 정보화의 물적 기반이 가장 앞서 있고 추진속도가 빠른 대구의 경우에도 38%의 초등학교만이 컴퓨터를 선택과목으로 두고 있는 현실이다.
이는 결국 컴퓨터 교육을 위한 사교육비 증대를 불러오고 있다. 이번 겨울방학에 자녀의 컴퓨터 관련 특기.적성교육이나 학원수강을 위해 10만원 안팎을 쓴 가정이 상당수다. 교과과정이 바뀌지 않는 한 이 비용은 갈수록 늘어날 수밖에 없다.
▨관리할 사람이 없다
정부 계획대로라면 연말에는 각 학교마다 보유하는 펜티엄급 PC가 최소 100대 이상에 이른다. 또 인터넷망이나 종합정보관리시스템 등을 위한 기기, 회선 등도 학교마다 들어가고 프로젝션TV나 멀티미디어 기기 등도 전면적으로 배치된다. 나무 책걸상을 삐걱거리며 분필가루 날리는 칠판을 바라보던 풍경은 사라지고 각종 전자기기가 학교를 뒤덮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이를 관리하고 운용할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이다. 각 학교에서 이를 총괄하는 직책은 교육정보부장. 말이 좋아 부장이지 교사들 사이에는 보직 기피 현상이 불거진지 오래다. 업무는 많고 전문성이 부족하다 보니 당연히 생길 수밖에 없는 일이다.
중고의 경우 이공계 대학 출신 교사가 몇명이라도 있어 그나마 다행이지만 교육대학 출신만 빼곡한 초등학교는 그야말로 대책이 없다. 정부는 4년에 걸쳐 전 교원에 대해 정보화 연수를 실시한다고 하지만 얼마나 알찬 교육이 될지는 미지수. 교육정보부장을 맡을 만한 교사를 양성하기는 아예 불가능해 보인다.
교사들은 전산장비나 네트워크 등 학교내 시스템 관리를 전담할 전산인력 신규채용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이 역시 대우 문제를 놓고 보면 회의적이다. 컴퓨터 관련 인력에 대한 사회적 수요가 폭증하는 현실 속에서 정부가 제시할 수 있는 조건이 어느 정도 매력을 가질 수 있을지는 불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이같은 조건에서 파생될 수 있는 부작용은 예측하기도 힘들다. 대구의 경우 이미 홍역을 치르고 있지만 앞서가다 보니 그나마 나은 편. 하지만 올해중 전국적으로 PC와 네트워크가 대대적으로 설치될 경우 공급업체나 설치업체의 뻔한 인력으로 각 학교의 사용설명, A/S 등 숱하게 쏟아질 요구를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컴퓨터 보급 초기, 플러그를 안 꽂은 채 컴퓨터를 켜다 부팅이 되지 않자 A/S를 불러 호통을 치던 씁쓸한 상황이야 없겠지만.
▨소프트웨어는 어디서 구하나
정부의 교육정보화 종합대책은 부분 부분 구색을 갖추었지만 소프트웨어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은 찾기 힘들다. 지금까지 학교의 소프트웨어 구입은 PC를 들일 때 일부를 구입하고 1년에 학교당 100만원 정도를 지원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학교 담당자들이 제시하는 연간 소프트웨어 구입비는 500만원 정도.
과거에는 궁여지책으로 소프트웨어를 불법복제해 사용하기도 했지만 단속이 강화된 현 시점에서는 아예 포기한 상황. 지난해 불법복제 단속이 대대적으로 벌어지자 각 학교에서는 설치된 소프트웨어를 삭제하는 소동을 벌이기도 했다. 이후 새로 설치한 소프트웨어가 별로 없다보니 "학교 PC에는 쓸만한 프로그램이 별로 없다"는 불만이 학생들 사이에 터져나오고 있다. 기종은 펜티엄인데 알맹이는 486 수준인 것. 아무리 많은 돈을 들여 PC를 구입한들 학생들이 외면한다면 허사인 것이다.
물론 교육용 소프트웨어를 구입하는데는 어마어마한 예산이 필요하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교육당국이 사고의 전환을 통해 공격적인 자세를 갖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한다. 학교교육의 공공성을 내세우지 않더라도 소프트웨어 공급업체 입장에서 보면 학교는 미래의 잠재 고객을 양성하는 기관으로 충분히 투자할 가치가 있다는 점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소프트웨어 공급업자들도 저가 보급, 아카데미 버전과 실습실용 버전의 차별화 등 나름의 전략을 세울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지난해 아래한글, 훈민정음, MS워드 등 3개 프로그램이 학교 워드프로세서 시장을 잡기 위해 출혈경쟁까지 마다않았던 사건은 시사하는 바 크다.
신우섭 대구시교육청 교육정보화과장은 "학교의 공동대응, 관련 법률의 적극적인 해석 등을 통해 소프트웨어 구매에 학교현장의 목소리를 최대한 반영하는 한편 교원용, 학습용, 업무용 등 PC 용도에 따라 구입방법을 달리 하는 등 다각적인 대책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金在璥기자
댓글 많은 뉴스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헌재, 감사원장·검사 탄핵 '전원일치' 기각…尹 사건 가늠자 될까
계명대에서도 울려펴진 '탄핵 반대' 목소리…"국가 존립 위기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