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조 유림계를 풍미했던 이기(理氣)철학, 그것은 과연 생명 없는 공리공론일 뿐일까? 일본인 학자 다카하시 도오루(高橋 亨)의 관련 저술들이 '조선의 유학'이란 책(소나무 펴냄)으로 묶여 최근 번역돼 나온 것이 다시 한번 그런 의문을 되살리게 한다. 공론이 아니라야 지금의 교양인에게도 유효할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다카하시의 연구는 우리 이기철학에 대한 근대적 연구의 시초를 열었던 중요한 것들이다.
이럴 때 떠오르는 것은 지난 77년에 출판됐던 국문학자 조동일 교수의 저서 '소설의 이론'이 준 충격이다. 이 책은 이기철학을 살아 펄떡거리는 철학이라고 판단하고 나아가 자신의 문학사 파악의 새로운 잣대로 우뚝 세우기까지 한다.
"주리론자 퇴계는 군신이 있기 전에 군신의 도리가 먼저 있다고 했다"는 것이 조 교수가 제시한 한 예이다. 그렇다면 군신의 도리는 인간이라면 무조건 지켜야 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반면 주기론적인 서경덕은 "이(이치)는 기(氣)의 용사(用事)일 뿐"이라 했다고 대비시킨다. 이 논리에서는 각각의 군신 관계는 그 나름대로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런 정도라면 이기철학도 살아 있는 것 아닐까.
북한의 철학사는 더 예민하다. 주기론적이라는 점 때문에 북한은 김시습을 굉장히 우호적으로 평가하고, 서경덕을 좋게 말하는 대신, 퇴계는 봉건제도의 주구로 폄하한다.
여기다 안동대 윤천근 교수의 저서 '퇴계철학을 어떻게 볼 것인가'가 보태지면 박진감까지 생긴다. 이기철학 중 주기론 쪽인 성리학을 윤교수는, "사서오경이라는 원시유학을 더 쉽게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철학"이라고 설명해 버리는 것이다. 이기철학이라면 머리부터 아파오는 일반인들에겐 전혀 반대되는 이야기인 것. 이기철학이 함부로 공론시 될 수 없음은 금방 깨달을 수 있다.
'조선의 유학'은 다카하시의 1927년 강좌록 '조선유학 대관', 29년 논문 '조선 유학사에서 주리파.주기파의 발달' 등 초기 논문과, 그가 일본으로 되돌아간 이후에 쓴 논문.서평 등을 싣고 있다. 그의 주요 저술들이 거의 수합됐다는 의미가 있다
다카하시는 국어학에서 놀라운 성과를 보였던 오쿠라 신페이(小倉進平)와 함께 일제 침략기에 우리 학자들에 앞서서 한국의 문학과 사상사를 정리함으로써, 그 후 한국인에 의한 연구에도 적잖이 영향을 준 인물. 양주동 박사에 의한 향가 연구서와 고(故)현상윤에 의한 조선유학사도 그들의 저술 보다 25년 가량씩이나 뒤졌다.
번역.해설자에 의하면 그러나 그의 논문들엔 잘못도 많다. 퇴계의 주장을 주리론, 율곡을 주기론으로 몰아간 것도 하나. 이 편가름은 74년도에 나온 고(故)배종호의 '한국유학사'는 물론, 앞서 예를 든 조동일 교수의 역작에까지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진정한 의미의 주기론자는 없고, 율곡은 더더욱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다 다카하시는 식민주의 앞잡이적 시각을 시종일관 유지하고 있는 것도 유의해서 읽을 대목으로 지적됐다. "일본은 개방적이었으나 조선에서는 퇴계가 주리론 외에는 이단시함으로써 학문의 폭이 엄청나게 좁아졌고, 이러한 두 나라의 차이는 앞으로도 영원할 것" "퇴계 문인들인 남인은 정권에서 소외되자 고루해지고 어리석어져 그 좋은 한일합방을 이해하지 못해 자꾸 말썽을 피운다"는 등이 구체적 예이다.
朴鍾奉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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