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힘에 밀린 소신검사

입력 2000-01-08 00:00:00

지난해 1월 '항명파동'의 주역 심재륜 당시 대구고검장은 "검찰에 대한 국민의 비난은 정치 권력의 시녀로 전락한 검찰의 업보"라며 "김태정 검찰총장은 후배들을 희생시키지 말고 무조건 사퇴해야 하며 수뇌부가 스스로 물러나면 나도 퇴진하겠다"고 버텼다. 심씨의 이 말은 결국 채 1년도 안돼 현실로 나타났다. 김태정씨는 '검찰총수 구속1호'라는 불명예를 안고 수감됐다. '사람일이란 한치 앞을 알 수 없다'는 말이나 인생유전(人生流轉)이 실감나는 대목이다. 심씨의 권고처럼 김태정씨가 그때 사표를 냈더라면 최소한 구속이란 최악의 상황은 면했을지도 모른다. 김태정씨는 최근 구속 한달만에 보석으로 석방되면서 구치소가 그렇게 인권 사각지대인줄 몰랐다며 법무장관때 왜 그걸 몰랐던가 하고 후회했다는 말이 전해져 그곳에서 꽤나 고생한듯한 뉘앙스를 풍겼다. 그 구치소엔 아직 박주선 전 대통령법무비서관이 수감돼 있다. 들리는 말로는 아직 그는 뉘우침은 커녕 분을 삭이지 못해 마음고생까지 겹쳐 이중.삼중의 고생을 하고 있다고 한다. 박 전 비서관을 구속시킨 1등공신은 뭐니뭐니해도 당시 이종왕 수사기획관이었다. 수뇌부의 압력에 불복하고 그의 구속을 강력 주장하며 수사팀에 힘을 실어 주고 그 의지의 표현으로 그는 사표를 던지고 종적을 감췄다. 사실 이종왕씨의 이같은 선비정신다운 소신이 아니었다면 박씨의 구속은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대검의 최종수사 결과가 특검의 결론을 완전히 뒤집은 것으로도 짐작할만 하다. 문제는 이종왕씨는 수뇌부와의 알력으로 스스로 물러난게 아니라 그의 강경수사태도를 못마땅하게 여긴 수뇌부가 옷사건 수사에서 손을 떼라고 하는 바람에 사표를 쓴 것이라고 그의 측근이 밝혀 충격을 주고 있다. '옳게 하자'는 소신있는 부하검사가 눈엣 가시처럼 되자 수뇌부가 힘으로 그를 검찰에서 밀어냈다는 얘기가 아닌가. 이런 논리라면 검찰에 남을 소신파가 과연 얼마나 될까. 검찰은 아직도 미몽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엄정중립.불편부당한 검찰상'을 표방하며 '거듭나겠다'는 검찰의 새 천년 신년사도 결국 '쇼'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음도 이에 연유한다.

박창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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