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교육청 깨끗한 화장실 만들기

입력 2000-01-06 14:06:00

수업시간 내내 아픈 배를 움켜쥐고 끙끙거리다 종례가 끝나면 노랗게 변한 얼굴로 집을 향해 달려가는 아이들. 있는 힘껏 코를 움켜쥐고 고개를 돌린 채 빗자루며 걸레가 벽을 닦는지 바닥을 닦는지도 모르면서 청소랍시고 하던 모습. 불결하고 악취가 풍기는 화장실이 만들어내던 학교의 풍경들이다. 그리 먼 옛날도 아니고 불과 얼마 전까지도 그랬다.

대구시 교육청이 지난 10월부터 '깨끗한 화장실 만들기 운동'을 벌인지 불과 두 달 사이. 대구시내 각급 학교의 화장실 풍경은 완전히 달라졌다. 어느 학교랄 것도 없다. 집 주변 학교 화장실에 한번 쯤 들러본 사람들은 모두 놀라고 있다.

깨끗한 바닥과 벽면은 기본. 악취가 사라진 자리를 그림과 사진과 꽃이 채우고 있다. 성북초등학교 화장실을 가 보자. 우선 학생들이 한지 등으로 직접 만든 작품들이 눈에 들어온다. 들어가 보면 키나 몸무게를 잴 수 있는 기구들도 있다. 학생들의 그림을 얹어둔 이젤도 보인다. 어울리지 않는 발상일까. 오르간도 보인다. 전자오르간이 학교에 보급되면서 창고에 보관될 오르간이 화장실 풍경의 한 부분을 차지한 것이다. 아이들이 재미있어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용전초등학교 화장실도 독특하다. 구석구석 놓아둔 화분에는 학교에서 직접 기른 음지식물들이 심겨 있다. 화분은 재활용품으로 만들어졌다. 조용한 곳(?)을 들여다보면 코너에 부채꼴 모양의 독서대가 이채롭다. 조명이 대단히 밝고 비치해 둔 책은 큰 활자로 만들어진 시집이다. 학생들의 시력보호를 위한 배려.

화원읍에 있는 화남초등학교 화장실에는 달성지역의 문화유적을 찍은 사진들이 액자에 곱게 걸려 있다. 달성지역에서 흔히 보이는 식물사진과 설명을 담은 카드도 촘촘하게 꽂혀 있다. 학부모들이 사회교육을 받으며 만들어 학교에 기증한 분경작품들은 운치마저 느끼게 한다.

초등학교 화장실이 '우리집 내방' 같은 분위기로 바뀌어져 어린 학생들에게 거부감을 떨쳐주는데 성공했다면 중고교 화장실은 또다른 의도가 엿보인다. 오성중학교의 경우 생활영어와 한자성어 등을 곳곳에 붙여두고 재미삼아 익힐 수 있도록 했다.대변기 바로 앞에는 작은 거울을 붙여 자세를 바로잡고 자신의 얼굴을 보며 자성할 수 있는 분위기도 만들었다. 대구공고에서는 액자와 꽃을 갖다두고 도색, 청소를 끊임없이 해대다 보니 화장실에서 담배꽁초가 발견되지 않고 있다. 화장실 내 흡연이 줄어드는 현상은 대부분 중고교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음담패설 낙서나 보기 흉한 그림도 사라졌다. 망외의 소득이다.

두달여 동안 화장실을 꾸민 효과는 외형적인 변화만 가져온 것이 아니다. 학교 관계자들은 학생들 스스로 화장실을 깨끗하게 써야 한다는 의식과 습관이 생긴 것이 가장 중요한 변화라고 손꼽는다. 처음 화장실을 변화시키자는 운동이 벌어졌을 때만 해도 학생들은 물론 교사들까지도 골치아파 하며 그저 생색이나 내려 했던게 사실.

그러나 손을 댈수록 깨끗해지는 화장실을 보면서 학생들의 이용습관도 점차 청결하게 바뀌어갔다. 이제는 집에 가서 부모들에게 학교 화장실을 자랑할 정도. 오성중 류상덕교장은 "초기에는 교사나 학생들의 불만이 적지 않았지만 지금은 모두가 만족스러워 하고 있다"며 "학생들이 학교 화장실을 자기 집처럼 생각하는 모습이 정착됐다"고 말했다.

"깨끗한 화장실 만들기 운동이 이처럼 빨리 뿌리내릴 줄은 예상 못했습니다. 두달만에 학생들의 의식변화까지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그만큼 깨끗한 화장실에 대한 잠재적인 요구가 높았다는 뜻이겠지요" 대구시 교육청 김영수 장학사의 설명이다. 김장학사는 이제 한 차원 높은 화장실 운동을 계획중이라고 한다.

"삼상(三想)이라는 옛말이 있다고 합니다. 마상(馬想) 책상(冊想) 측상(厠想) 세가지인데 사람들은 대개 말에서, 책을 보면서, 화장실에서 생각을 많이 한다는 거죠. 우선 메모지와 필기도구만 화장실에 비치해도 학생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하버드 대학 화장실에는 칠판이 걸려 있다고 들었는데 좋은 아이디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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