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대담 -21세기 정치 바뀌어야 한다

입력 2000-01-03 14:00:00

◈◈참석자 ◈윤용희(경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김태일(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정택수(매일신문 정치1부장·사회)

▲사회=2000년은 새 천년 한국정치를 이끌고 갈 국회의원을 뽑는 제16대 총선이 있는 해이지만 현실은 21세기를 맞을 준비가 돼 있지 않은 것 같다. 21세기 새로운 정치풍토 정착을 위한 정치개혁의 요체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윤=큰 방향은 민주화됐다고는 하지만 민주성, 공정성 그리고 효율성과 투명성이 더 보장돼야 한다. 또한 개혁이 자신들의 정권내에서 완성돼야 한다는 정권담당자들의 생각 자체가 개혁돼야 한다. 정치소비자인 국민은 전혀 감안하지 않고 있다. 물론 지도자와 국민의 의식도 전환돼야 한다.

▲김=21세기를 맞으면서도 얼마나 변하겠느냐는 비관론과 허무주의가 팽배하다. 그러나 불과 10년전과 비교해 보면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정치안정과 평화는 눈물겨운 것이다. 폭력으로 상징되는 바리케이드의 정치에서 대화와 타협의 발코니 정치로 변했다. 따라서 21세기에는 실질적 민주주의 공고화, 나눔의 정치 공존·상생의 정치가 지향점이 돼야 한다.

▲사회=보스 1인에 의해 좌우되는 정당으로 인해 지역갈등만 야기했다. 이제는 이념과 정책으로 차별화 된 정당이 필요하다고 본다. 정당문화를 개선시킬 방안은 없는가.

▲윤=보스 중심으로 이익을 챙기려는 방향에서 개혁이 논의되고 있어서 기대할 것이 없는 것 같다. 정당의 개혁은 이념과 정책을 공유하는 방향으로 가닥이 잡혀야 하고 정계개편은 부분적인 합당이 아니라 대폭적인 개편이 돼야한다. 기존 정당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

▲김=정당 내부의 민주화가 정당개혁의 요체다. 공화당에서 시작된 사무국 중심의 총재 1인 정당체제에서 국회의원들의 활동 등 원내중심 체제로 바꿔나가야 한다.▲사회=정당조직의 슬림화가 진행중이다. 고비용 정치의 주범이라고들 하는 중앙당이나 지구당의 폐지논의도 있다. 바람직한 정당시스템은 어떤 것인가.

▲윤=우리 정당은 선거 때만 활동하고 평소에는 휴면상태다. 이념·정책 정당이 되기가 어렵다. 중앙당은 정책개발과 시·도지부 관리분야 등에만 기구와 인원만 남겨두는 슬림화가 필요하다. 그러나 지구당 폐지는 반대다. 지구당은 정치적 뿌리이자 유권자와 접촉하는 정치 첨병역할을 해야 한다. 지구당을 폐지해도 연락사무소 형태로 변형·유지될 것이다.

▲김=고비용 저효율의 주역은 지구당의 조직운영과 관리다. 지구당이 존속할 경우 풀뿌리가 강화될 수 있지만 지구당이 현재 민원 조정·해결의 장이고 음성적 거래와 유착이 오가는 거점이라면 정치개혁 요체는 지구당폐지다. 지구당은 '정치의 밤업소'같은 존재라고 본다.

▲사회=보스의 하수인을 뽑는 듯한 지금의 공천제도에도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윤=먼저 정당원과 당원조직이 민주화돼야 개선된다. 현재는 당원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어 절름발이가 돼 있다. 그러나 지금 이대로 당원대회를 통한 공천을 도입한다면 토호들의 독점과 패거리 문화 등 폐해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따라서 대의원대회·당원대회·예비선거제 등으로 발전돼야 할 것이다.

▲김=두 가지 방식이 있을 수 있다. 지구당에서 추천권을 갖는 것과 아예 당 울타리를 넘어 유권자-지지층을 대상으로 하는 공천자 결정 방식이다. 그러나 과도기적 방식으로 시민단체·학계·언론계·법조계 등을 위원으로 위촉, 공정하게 후보를 뽑는 공천위원회제도의 도입도 검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사회=불법·타락 선거 근절대책은 어떤 것이 있을 수 있는가.

▲김=최고통치권자의 의지가 있어야만 공명선거가 될 수 있다. 법이 잘 만들어지더라도 집행자의 의지가 없다면 공염불에 불과하다. 94년 공직선거법이 제정된 이후 11번 개정을 거쳤으나 달라진게 없다. 공교육이나 시민단체의 정치교육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바른선거모임 등 자율적 감시체제 구축도 선거문화 개선에 도움이 될 것이다.

▲윤=유권자들의 감정이 좋아하는 사람은 부정해도 봐주고 싫어하는 사람은 부정하면 매도하는 식이어서는 안된다. 올바른 가치관을 갖고 올바른 평가를 할 수 있는 풍토가 돼야 한다. 지도자·입후보자·유권자 모두가 이런 생각을 가져야 한다. 법적·제도적 규율이 뒷받침 돼야 한다.

▲사회=돈 선거를 근절하고 과학적 선거문화를 정착시킬 복안은 없는가.

▲김=언론매체를 통한 후보자 정보 획득 비중이 확대돼야 한다. 공정성에 대한 우려가 있지만 역할을 강화시켜야 한다. 그러나 TV가 감성에 치우칠 수 있는 맹점은 있다.

▲윤=동감이다. 주로 정치정보는 매스미디어를 통해서 획득할 수 있다. 국민들이 동시에 정보를 얻을 수 있고 후보간 차이도 식별이 가능한 장점이 있다. 다만 능력과는 별개로 인물이나 언변이 좋은 사람에게 유리하다는 약점도 있어 보완이 필요하다. 돈선거에 대한 법규정은 허점투성이다. 더 엄격한 규제장치가 필요하다. ▲사회=선거과정 중의 여론조사 결과 발표가 논란이 되고 있다. 출구조사 결과 발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인데.

▲윤=선거과정의 여론조사 결과 공표는 중요하고 한시라도 빨리 도입해야 하지만 출구조사는 그렇게 급한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결과 발표의 전제로 객관적이고 납득할 수 있는 기준이 제시돼야 한다.

▲김=돈선거를 막을 수 있도록 여론조사의 기법을 세련화하고 신뢰도를 제고해야 한다. 부작용도 있겠지만 시장논리에 맡기면 정착될 수 있을 것이다. 여론조사 결과도 공표돼야 한다. 또 노조와 사회단체 등의 지지후보 표명에 대한 규제도 풀어야 한다.

▲사회=선거공영제 확대에 대한 생각은.

▲윤=선거공영제는 이상적으로 잘 된다면 선거관리에서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공적자금 부담만큼 효과를 낼지는 의문이다. 또 공영제가 확대된다고 후보들이 사적자금을 덜 쓸 것인가는 생각해 볼 문제다. 다른 차원에서 선관위 직원들의 위상 강화와 사기진작책이 필요하다. 선거법 위반에 대한 신속한 제재도 가능해져야 한다.

▲김=선관위의 역할과 비중 그리고 권한이 확대돼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라고 본다. 정책선거로 갈 수 있는 견인차가 될 수 있도록 선거공영제는 확대돼야 한다. ▲사회=지역의 정치·선거문화에서는 연고주의·지역주의가 팽배하다. 투표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는데.

▲윤=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적 차원의 해결과제다. 지연·학연·혈연을 바탕으로 한 패거리 정치에 의해 정당이 형성되고 대통령후보도 배출했다. 연고 집단이 기득권 세력을 형성, 세습화하는 현상까지 빚었다. 그러나 그 부작용을 잘 알게된 만큼 이제는 정당이나 정책·공약·후보자 인물됨·경력·비전을 기준으로 투표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김=누가 원인을 제공했느냐는 논의는 생산적이지 않다. 관건은 우리 내부에서 지역주의가 온당치 않다는 자발적인 자각이 생겨나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동서화합 주장은 승자의 영지확대 슬로건으로 받아들여져 반발만 초래했다.

▲사회=지역에서는 인물키우기에 인색하다. 중진을 키우는 풍토도 없고 그렇다고 신인들에 대해서도 제대로 평가해 주지 않는데.

▲윤=이도 저도 똑같다고 한꺼번에 매도하는 자세는 바람직하지 않다. 이상주의에 치우치기보다는 상대적 우위의 인물을 키우고 부족분을 보완해 주는 자세도 필요하다.

▲김=지역이 통치자만 키웠지 희생과 봉사와 결단 등의 미덕이 필요한 정치인을 키우지 못한 데 따른 당연한 결과다. 대구사람들의 대표적 성정인 인내심과 끈기를 바탕에 두고 21세기 불확실성의 시대에 필요한 덕목인 유연함과 관용을 가진 리더가 필요하다.

▲사회=국회의원이 지역의 대표인가 국정의 주역인가에 기준이 필요하다. 유권자들의 기대는 이중적인데.

▲윤=국회의원은 지역의 일을 보는 사람이 아닌데 그렇게 인식돼 왔다. 지역의 문제는 지방자치를 정착시켜 지방의원과 단체장에게 맡기면 된다. 국회의원은 국가적 차원에서 일을 해야하고 지역구의 발목에서 벗어나야 한다. 유권자들은 국회의원에게 기능에 맞는 역할을 요구해야 한다.

▲김=유권자들이 반성해야 할 대목이다. 명절이 다가오면 가슴이 조여온다는 정치인들의 하소연을 유권자들이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한다.

▲사회=21세기 지역의 정치상을 전망한다면.

▲김=21세기에는 관용과 다원주의 그리고 사회적 소수에 대한 연민 등이 주목할 만한 가치라고 본다. 대구·경북은 집단 정체성은 강하지만 개성과 이질성을 존중해 주는 가치관이 부족하고 다양함에 대한 관용풍토도 아쉽다. 따라서 낡은 질서를 지키려는 기득권층의 버티기와 신세대의 변화욕구간 다툼이 치열할 것이다. ▲윤=21세기가 모든 것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불확실성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정치에서도 새로운 가치창조가 절실하지만 온정주의·연고주의가 미덕이라는 사고와 지역감정에 바탕을 둔 선거경향은 더욱 강하게 나타날 것이다. 당분간 잦은 정권교체가 이뤄지고 정치적 노폐물을 걸러내는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정리 李東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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