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동포 100년 (13)재일동포 모국방문단(하)

입력 2000-01-03 14:23:00

재일동포 모국방문 사업은 각계의 주시와 본국 국민들의 열렬한 환영속에 성공리에 추진됐다.

1976년에는 각계의 뜻을 모아 '재일동포 모국방문 후원회'가 결성돼 국민모금도 시행됐다. 이 후원회는 나중에 '해외동포 모국방문 후원회'로 확대되면서 재일동포뿐만 아니라 사할린 동포를 비롯 재소 동포, 재중 동포들의 모국 방문사업으로 확대됐다.

같은해 7월 도쿄에서는 성묘단에 참가했던 과거 조총련인사들로 구성된 '조총련동포 모국방문추진 중앙연합회'가 결성됐다. 또한 일본 각지에서도 성묘단 참가자들의 모임인 오사카의 '정로회(正路會)', 카나가와의 '상록회'등이 결성돼 친목도모와 조총련 동포에 대한 참가 권유를 하게 됐다.

재일동포 성묘단 사업의 성과를 정리하면 첫째 개인적으로 봐서 30여년간 인위적으로 차단됐던 모국을 방문하게 됐고 부모형제를 상봉할 수 있었던 감격이 있었다. 또한 조총련 체제 속에서 왜곡된 조국관을 강요당했던 상황에서 자유로운 사고로 복귀할 수 있었던 것이다.

둘째 본국의 실정을 직접보고 조총련의 악선전이 허위임을 알게되는 등 조총련 조직 전반에 걸쳐 동요를 초래했다.

셋째 성묘단 참가자들이 민단으로 전향한 것인데 이로써 민단의 세력이 크게 확장됐다. 초기 2만2천여명의 참가자중 약 70%가 민단에 입단하였는데 이는 참가자 본인들에게 새로운 현실 파악의 기회가 되어 사업관계나 가족관계 등 특수한 사정이 있는 일부 인사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과거를 청산하고 민단 단원으로써 새출발을 하게 됐다.

성묘단 사업의 초창기인 1975년 9월경의 참가자는 1세, 고령자, 남자가 중심이었으나 3년후인 1978년의 추석 성묘단은 규모도 확대됐고 남녀, 연령별 차이도 없어졌다. 따라서 고향방문이라는 성격은 바뀌어 1세.2세의 구별없이 모국을 찾는 운동으로 발전됐다. 이처럼 모국방문사업의 성공적인 추진으로 재일동포를 위한 공원묘지인 '망향의 동산'을 설립하게 됐고 정부보조금의 정착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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