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고의적이고 부정적인 행위의 나쁜 결과보다 실수로 인한 나쁜 결과에 대해 일반적으로 더 관대하다. 이로부터 과정이 행위 평가의 중요한 준거가 됨을 알 수 있다. 또 어떤 일을 할 때 전혀 의도하지 않은 좋은 결과를 낳은 경우 원래 의도까지 정당화될 수는 없다. 예컨대 도둑질하러 들어간 집이 마침 불이 나려고 해서 소방서에 신고, 화재를 막은 경우 결과적으로 좋은 결과를 낳긴 했지만, 그렇다고 도둑질하러 남의 집에 들어간 행위가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우리는 어떤 행위의 결과가 좋을 때 그 행위를 옳다고 보고, 그렇지 않을 경우 그 행위는 옳지 않다고 판단하기 쉽다. 그러나 행위의 정당성은 그 원래 의도와 과정을 무시한 채 결과의 좋고 나쁨만으로 결정되어서는 안된다.
먼저, 행위의 정당성은 원래 의도가 옳은지 그른지에 따라 판단되어야 한다. 행위의 정당성과 관련하여 존 롤즈 같은 목적론자들은 '좋음을 옳음과 상관없이 규정하고 옳음은 그 좋음을 극대화하는 것으로 규정한다'고 한다. 이런 입장에서 보면 손순의 행위는 정당화될 수 있다. 손순의 경우 어머니에 대한 효행으로 자식을 땅에 매장하려다 우연히 발견한 석종 덕분에 임금으로부터 포상을 받게 된다. 여기서 석종을 얻고 포상을 받게 된 결과는 '좋음'이 극대화된 경우이다. 그러나 의무론자들은 이와 다른 입장에 선다. 손순의 행위는 원래 그가 의도하지 않았던 행위이다. 따라서 이것 때문에 그의 행위가 정당화될 수는 없다. 그는 어머니를 배부르게 하기 위해서 자식을 매장하려 하였다. 그에게는 부모에 대한 효행의 의무가 있지만, 동시에 자식의 생명을 빼앗아서는 안되는 살인 금지 의무도 있다. 따라서 그는 효행의 의무를 위해서 살인 금지 의무를 어기려 했던 것이다. 그의 행위의 정당성은 이런 관점에서 평가되어야 한다. 살인 금지 의무가 보호하는 인간의 생명 가치는 지고한 것이기 때문에 결국 그의 행위는 정당화될 수 없다.
또한 행위의 정당성은 과정이 옳은지 그른지를 보고 판단해야 한다. 이를 위해 영화 '서편제'는 좋은 예가 된다. '서편제'에서 소리꾼은 딸이 득음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딸 몰래 딸의 눈에 청강수를 넣는다. 그런데 인간의 신체는 생명 못지 않게 인간에게 귀중한 것이다. 본인 이외에는 누구도 임의로 상해를 입힐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의 생명이나 신체는 인간을 인간이게끔 해주는 것 그 자체이기 때문에 그 어떤 가치보다도 중시되어야 한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 자신의 의지에 따라 자신의 삶을 설계할 권리를 지닌다. 여기에는 당연히 자신의 신체에 대한 권리도 포함된다. 소리꾼의 딸 역시 그러한 권리를 지니며, 아비라 해서 그것을 임의대로 간섭할 수는 없는 것이다. 소리꾼은 바로 이런 의무를 위반했기 때문에 그의 행위는 정당화될 수 없다. 따라서 소리꾼의 이런 행위는 그 목적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행위 그 자체는 비방받아 마땅한 것이다.
손순과 같이 우연히 좋게 된 결과에 의해서나 혹은 소리꾼과 같이 그 목적만이 좋다고 해서 그 행위가 정당화될 수는 없다. 성경을 읽기 위해 촛불을 도둑질한 행위는 용납될 수 없다. 도덕적 덕목이나 가치의 우선 순위는 시대와 장소마다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시대 어느 장소에서든지 행위의 정당성을 목적 혹은 결과만을 준거로 하여 판단할 수는 없다. 따라서 과정과 결과가 모두 긍정적일 경우에 행위의 정당성은 확보될 수 있다.
김봉남 대구외국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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