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가 저물고 있다. 그저 1999년만 끝나는 게 아니다. 올 세모(歲暮)는 금세기의 마지막을 보내고 금(今)천년을 하직하는 의미를 함께하는 것이다. 천년의 세모에 서서 한 인간으로서, 지역사회의 입장에서, 국가와 민족의 상황에서, 지구촌의 일원으로서 느끼는 감회는 여늬 때와는 사뭇 다르지않을 수 없다. 우리가 간직해야할 것과 버려야할 것을 분별하고 기쁨과 희망으로 기억해야할 것과 반성과 참회로 청산해야할 것을 곰곰히 생각해보지않을 수 없다.
올 한해는 그 지긋지긋한 IMF관리체제 3년째를 보내며 외환위기를 벗어나고 본격적 경기회복의 궤도에 들어섰다는 사실을 특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위기극복은 새로운 불안과 고통을 그림자처럼 동반했고 그 그늘속에서 서민의 삶은 더 고달파졌다. 이른바 20대 80의 빈부격차와 중산층이 무너진 사회, 실직과 노숙이 상당한 하류계층에 일상화된 사회, 지방과 수도권의 차이가 갈수록 확대되는 사회는 위기극복의 기쁨도 잠시일뿐 새로운 시련과 도전을 안겨주고있는 것이다.
남북문제에선 이른바 포용정책의 성과도 있다고는 하지만 아무래도 불안과 불신을 떨쳐버릴 수 없는 일도 한두가지가 아니다. 금강산에 대규모 관광단이 들어가고, 한국형경수로가 북한땅에 세워지고, 남북농구선수들이 교환경기를 하는 모습은 한반도의 긴장이 풀리는 징후로 여겨진다. 그러면서도 북한은 바다로 간첩선을 침투시키고 서해상서 교전을 유발하고 한반도문제에서 우리정부를 배제시키는 이중성을 보이고있다. 그런 정책의 분위기속에서 우리 스스로 안보불감증이 확산되는 사회풍조는 많은 국민들이 우려할 지경에 이른 것이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올한해 가장 큰 울분과 절망을 가져다준 것은 극심한 민생피패와 안보불안 속에서도 정치권의 끝없는 소모적 정쟁과 옷로비의혹등 각종 의혹을 둘러싼 거짓과 배신이다.
금세기엔 일본제국주의로부터 나라를 강탈당했고 그후 분단상태의 광복은 비극적 동족상잔을 빚었으며 군사쿠테타와 권위주의정부, 산업화와 지역갈등, 그리고 민주화의 소용돌이속에서 슬픈 희생과 신고를 겪기도했다. 이것은 개혁과 수구의 싸움에서 일진일퇴(一進一退)하는 과정이며 사회지도층의 사악한 이기심과 위선이 간단없이 표출했던 결과라 할 수도있을 것이다.그런가운데서도 경제규모 10위권에 짐입하는 선두개발도상국의 위치에 오른 것은 큰 기쁨과 희망이었다. 그러나 패망했던 일본이 다시 일어서 한때 세계경제1위의 경제대국이 됐고 지금은 노골적으로 독도삼키기의 야욕을 드러낼만큼 우리를 압박하고있는 현실은 제국주의망령이 부활되는 느낌마저 준다. 이러한 민족과 국가의 진운속에서 겪고있는 일련의 참상과 좌절은 우리 내부의 불의와 허위가 자초한 것이라해도 지나치지않다.
지난 천년을 살펴봐도 고려와 조선조의 성숙한 문화를 기억해야겠지만 몽고의 병란, 임진왜란 등의 외침과 몰락은 금세기에 되풀이된 민족내부의 부패와 불의가 불러온 것이다. 지금도 우리는 자랑할 과거에 도취하기보다 반성해야할 경험을 더깊이 새겨야할 것이다. 아무리 구텐벨그보다 먼저 금속활자를 발명했다지만 서구문화의 꽁무니를 따르고있는 현실이 이를 아프게 지적해준다.
이제는 금세기, 금천년의 끝에 맞는 세모에서 우리를 절망과 슬픔으로 몰아넣었던 거짓과 부패와 불의를 모두 저 땅거미지는 어둠속으로 묻어버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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