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의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는 인상적인 미술 거장이 되기 위해 갖춰야할 요소는 무엇일까. 고흐 고갱 뭉크 모딜리아니...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유명 화가들을 떠올려 보면 그 조건은 쉽게 모습을 드러낸다.
미술적 재능은 물론 기본. 그외에 거장으로 인정받기까지 불행한 인생을 살아야하고 별난 여성 취향에 상식을 뛰어넘는 기행의 기록도 갖춰야 한다. 정신질환이 있으면 더욱 좋고 요절하는 등 죽음마저 극적이면 최상급 거장에 오를 자격이 주어진다.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거장들의 이같은 인생 역정은 비교적 자연스러웠다. 세상을 떠난 후에야 예술적 가치를 인정을 받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업주의가 사회 전반에 뿌리내린 20세기 후반에 들어 화가 스스로 거장이 될 조건을 만들어 나간 경우도 적지 않았다. 2차대전 전투기 조종사로 참전했다 실종됐던 시기의 경험을 미화해 논쟁을 빚었던 플럭서스 운동의 요셉 보이스나 변기를 화랑으로 끌어들인 마르셀 뒤샹 등. 그러나 자신을 베일에 싸인 거장으로 포장했던 화가중 단연 선두는 팝 아트의 대표적인 작가 앤디 워홀(1928~1987).
마릴린 먼로, 엘비스 프레슬리 등 세계적 스타의 얼굴이나 통조림 등 흔한 공산품을 실크 스크린 기법을 통해 반복적으로 나열했던 그의 작품은 대중적 인기를 얻었지만 평론가들사이에서는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쯤되면 워홀에게 '거장'보다 '팝 아트의 슈퍼스타'라는 칭호를 붙여봄직도 하다. 그의 '스타 만들기'는 출생 연도에서부터 시작된다.
서류상 1930년 출생으로 돼 있지만 워홀은 이것이 위조된 것이며 자신은 1928년과 1931년사이 어느날에 태어났다고 주장했다. 신비감을 조성하려는 의도라는 의혹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어릴 적에는 신경발작을 세 번이나(?) 일으켰다. 거장들의 필수조건인 정신병력까지 갖춘 셈이다.
이후 이름이 알려진 워홀은 롤링 스톤즈, 존 레논 등 인기 스타들과 함께 다니면서 자신을 스타와 동일시하는 작업을 계속했다. 여장한 사진을 공개하거나 영화를 찍어 끊임없이 화제를 만들어 갔다. '워홀이 나의 인생에 너무 많은 영향을 미친다'며 한 여성이 그를 저격한 사건도 워홀의 유명세에 한 몫 했다.
덕분에 1965년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개인전에서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려 작품이 손상될 것을 우려한 미술관측이 그림을 치워버리는 바람에 '그림은 없고 사람만 있는' 기이한 전시회가 연출되기도 했다. 워홀은 팬들에 둘러싸여 두시간동안 사인을 해주다 결국 뒷문으로 도망치기도 했다.
의도된 것은 아니지만 그의 스타만들기는 뜻밖의 죽음으로 대미를 장식한다.
담낭 수술후 간호사가 다른 일에 정신이 팔려 있던 사이 증상이 악화돼 사망한 것이다. 이 일은 '타살 의혹'을 일으켜 한동안 미국 언론을 떠들썩하게 만들었고 그는 스타성을 사후에까지 발했다.
워홀의 작품이 가진 미술사적 의의를 무시할 순 없다. 상업예술 기법을 사용해 대중문화의 진부함과 강한 잠식력을 폭로했으며 몰개성적인 작품을 통해 미래의 미국 예술을 예고하기도 했다.
다만 워홀 이후 작품 자체보다는 센세이셔널한 사건이나 기행 등 미술외적인 것들을 이용, 작가가 스스로를 유명인으로 만들어가는 것이 미술계의 씁쓸한 현실로 서서히 자리잡게 됐다.
金嘉瑩기자
댓글 많은 뉴스
"재산 70억 주진우가 2억 김민석 심판?…자신 있나" 與박선원 반박
이 대통령 지지율 58.6%…부정 평가 34.2%
김민석 "벌거벗겨진 것 같다는 아내, 눈에 실핏줄 터졌다"
트럼프 조기 귀국에 한미 정상회담 불발…"美측서 양해"
김기현 "'문재인의 남자' 탁현민, 국회직 임명 철회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