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새 것과 옛 것

입력 1999-12-30 14:14:00

새 카드, 새 달력, 새 수첩, 새 천년의 첫 새해맞이 준비로 모두들 떠들썩한 분위기다. 새해맞이는 낡은 자아가 낡은 시간으로부터 벗어나 새 자아로 새 시간을 호흡하고자 하는 몸짓이라고 말했던가?

한국을 처음 방문한, 미국 뉴욕에 사는 교수 두 명과 경주를 찾았다. 서울서 캄캄한 첫 새벽에 출발하면서 새 천년을 앞두고 옛 천년의 고도(古都)에 간다며 모두들 가슴 벅차 했다. 이른 새벽에 출발한 덕분 오전에 경주에 도착할 수 있었다. 박물관 주변을 걸으면서 우리는 옛 천년의 정취 속으로 천천히 들어갔다. 신라 토기의 편안하고 자연스런 색깔과 수더분한 모양새에 더욱 정이 가는 건 나이탓인지..

저녁식사를 끝내고 숙소에 돌아온뒤 일행인 맥교수는 실과 바늘을 꺼내더니 구멍난 양말을 기웠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사실 난 그녀의 구멍난 양말을 몇번이나 보았던 터였다. 내가 농담으로 추운 날씨에 불쌍한 발가락이 밖으로 나왔다고 말하면 맥은 웃으며 예쁘게 기우겠노라고 말했었다. 한국에서 미국여성이 열심히 양말깁는 모습을 보며 오래전 늘 양말을 기우시던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그리고 구멍난 양말을 기워 신을 생각조차 해보지 않은 나 자신의 여유없는 모습을 내심 부끄러워 했다. 그날 밤 우리 세 사람은 빨강 노랑 초록색의 실로 맥의 검은 양말을 함께 기우며 재미있는 예술양말로 바뀌는 걸 보면서 즐거워했다.

이튿날 토함산과 석굴암, 남산, 포석정을 둘러보면서 지난 옛 천년의 사람들과 그 영화와 몰락을 생각해 보았다. 시간 안에 있는 존재들은 스스로 시간따라 퇴색되고 바래질 수밖에 없음도 되새겨 보았다. 새 밀레니엄을 앞두고 옛 천년의 경주에서 낡은 시간과 새로운 시간의 교차를 온 몸으로 느낀 기회였다.

유분순.한국무용치료연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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