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어의 유래
20세기 한국 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용어 중 하나가 'TK'. 좋든 싫든 대구·경북지역민을 하나로 얽어 맨 이 'TK'란 굴레는 어디서 연유할까.
1950년대만 해도 대구·경북은 야도(野都)였다. 그러나 61년 군사쿠데타를 거쳐 새 정권을 창출한 여도(與都)로서 30년을 지내는 동안 지역출신 인사들의 정계 입문과 중앙진출이 활발해지면서 권력의 '메카'로 대접받았고 한편으론 비난받았다.
특히 '여소야대'국회에 위기감을 느낀 노태우 정권이 경북고 출신을 중심으로 한 지역출신들을 대거 요직에 앉히면서 중앙인사의 지역편중 현상이 심화됐다. 각종 언론에 'TK(대구·경북)'란 신조어가 등장한 것은 바로 이때부터다.
때마침 언론 자유화 바람이 불면서 'TK'는 한때 대구·경북민의 자부심의 표상으로, 때론 비판의 표적으로 향후 10여년간 매스컴을 장식해 왔다. 'TK'는 아류(?)를 낳기도 했다. YS정권에 의한 부산·경남출신들의 권력독점이 'PK(부산·경남)'로, '국민의 정부'들어 정부의 각종 요직이 단기간내 호남 인사들로 채워지면서 과거 정권과 다를 바 없다는 비판이 제기되자 'MK(목포·광주)'란 용어까지 선보이고 있다.
국내 지도급인사 2만3천여명 중 3.8%인 890명이 경북고를 졸업한, 이른바 '진골 TK'라는 올해초 한 조사에서 보듯 'TK'는 여전히 정치무대에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그러나 지역발전보다는 개인의 이익에 따라 이합집산을 거듭해 온 'TK'란 허명은 대다수 지역민들의 정서, 생활과는 동떨어진 한낱 퇴색되어 가는 낙인(烙印)이 아닐까.
■지역차별과 결속력
한국 현대사의 한 줄기를 이어온 지역 감정과 차별. 30년 TK 정권의 양지에서 벗어난 지금, 지역출신 인사들이 느끼는 피해 의식은 어떨까.
"너무한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예전에 호남 사람들이 가졌던 상대적 박탈감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것 같아요"
현 정권들어 지역 출신 인사들이 가지는 '지역 차별'에 대한 피해의식은 적지않았다. 전체 응답자중 60%이상이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경험했다고 대답했다.
이중 가장 두드러진 불평이 인사상 불이익. 모 공기업 이사인 이모(45)씨는 "현 정권전까지 본사 부장 13명중 지역 출신이 8명을 차지했는데 옷을 벗거나 지역본부 등으로 발령남으로써 지금은 한명도 없다"며 "나 자신도 항상 위기감 속에 살고 있다"고 털어놨다.
정부 산하 모연구소 소장인 한 인사는 "같은 고교 출신중 중앙부처 국장급 이상 간부가 15명 있었으나 현재 3명이 남아 있다"고 운을 뗀뒤 "TK 정권때는 고위직 낙하산 인사가 문제가 됐으나 요즘은 계장 등 하위 관리직까지 차별 인사가 나타난다"고 밝혔다.
한편 TK 정권 아래에서 지역 출신들이 혜택을 입었다는 주장에 대해선 절반 정도가 인정을 했으며 일부 인사는 현재의 차별을 '당연한 업보'로 받아들이기도 했다장성 출신 모 정치인은 "특히 노태우 정권 시절에 안기부장과 비서실장 등 주요 요직을 모두 경북고 출신이 차지한 적도 있었다"며 "그때 비하면 지금이 오히려 덜한 편"이라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이에 따라 '모래알 같다'는 지역출신 인사들의 '결속력'도 서서히 바뀌고 있다는 얘기도 있다. 요즘 향우회나 동창회 모임에서 '우리도 뭉치자'라는 전근대적인 화두가 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경북고 출신의 모인사는 "모 잡지에서 한국 사회에서 결속력이 강한 집단으로 경북고를 꼽았는데 알고 보면 전혀 아니다"며 "전부 제 잘난 맛에 살아온 탓에 정은 있어도 결속력은 거의 없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자신들의 보신(?)을 위한 이러한 움직임이 오히려 지역 감정의 골을 더 깊게 할 수 있다며 반대하는 분위기가 우세하다.
■근대화에 미친 영향·미래
"한국 근대화의 주역은 대구·경북 사람들"
지역 출신 인사들이 가지는 경제성장 공헌도에 대한 자부심은 상당히 높았다."우리의 경제 신화는 3공때 만들어졌고 그 중심에 지역 인사들이 있었다"는 경제관료 출신의 모 인사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광주 사태로 욕을 먹지만 현재 경제 체제의 기반인 국가 정보화 사업을 추진한 것 하나만 하더라도 대단한 일"이라고 평가를 내렸다.
그렇다면 '지역에서 한국 현대사 중심이 된 인물이 많이 나온 원인'은 무엇일까. 공통된 답을 정리하면 세가지 정도.
대다수 인사들이 입신 양명을 강조해온 영남지역 고유의 뿌리 깊은 선비사상과 농지가 적은 척박한 환경에서 나오는 도전적이고 진취적인 기질적 특성을 꼽았다.또 일부는 TK 장기집권에 따른 편중 인사와 상대적으로 많은 인구수를 원인으로 지적했다.
모 교수는 "삼국 통일을 이룬 신라 천년의 역사와 조선시대 국가를 지탱한 정신 사상의 바탕을 제공한 영남 사림파, 항일 운동의 업적 등을 볼때 지역민이 가지는 발전성은 역사가 입증한다"라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위에서 거론된 대구·경북인의 잠재력을 바탕으로 미래에 대해서도 많은 인사들이 낙관적인 전망을 보였다.
몇몇 인사들의 경우 "현재 어려운 상황에 따른 패배감에 젖지 않기 위해서라도 희망을 가져야 한다"며 정치성을 보이기도 했으나 많은 인사들(64%)은 지역민들이 무한한 잠재력을 바탕으로 21C에도 한국 발전에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답을 했다.
하지만 일부는 "세계화 시대에 특정 지역을 거론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며 "더 이상 특정 지역을 거론하지 말자"는 주문을 하기도 했다.
■전직 대통령들 평가
세명의 지역출신 전직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어떠할까. 지역출신 인사들의 가치관, 세계관을 살펴보는데 더할 나위없는 잣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박정희 압도적, 전두환 긍정적, 노태우 부정적'이라는 평가로 요약된다. 보수계층의 대변자라고 일컬어지는 대구·경북 출신인사들의 사고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극찬 일색이었다. 인터뷰 대상자의 80% 이상은 존경할 만한 인물로 박 전 대통령을 꼽았고, '위대한 지도자' '민족의 큰 인물'이라는 각종 미사여구까지 동원됐다. 박 전 대통령은 지역출신 인사들의 자부심으로 자리잡고 있는 듯 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도 긍정적인 평가를 하는 이가 많았다. 전 대통령에 대해 70%이상의 응답자가 '경제발전, 사회안정' 등에 대해 높은 점수를 줬다. '집권과정의 문제점'에 대해 지적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많은 수는 아니었다. 상당수는 전 전 대통령의 '집권과정'을 문제삼기 보다는 '시대상황'을 원인으로 돌렸다. 역시 팔은 안으로 굽는 모양이다.
전 전 대통령의 정치재개 움직임에 대해선 응답자의 70%이상이 부정적인 답변을 했고 대부분 '다시 정치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노태우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답변이 훨씬 많았다. 일부 인사들은 그를 '시대적 산물'이라며 두둔하는 이도 있었지만 대상자의 70%이상이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대구·경북 사람의 치욕' '거론할 가치도 없다' '없었어야 할 인물'이라는 극단적인 표현도 꽤 있었다.
■뒷이야기들
◎…지역출신 인사 상당수는 '존경할 만한 인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을 꼽아 최근들어 부각되고 있는 '박정희 신드롬'을 입증하는 듯. 박전 대통령에 대한 칭송은 정·관계, 경제계, 학계 인사는 물론이고 진보적인 재야출신 인사들까지 가세해 눈길.
노동운동가 출신의 한 정치인은 "분명한 자기 비전을 갖고 위대한 업적을 세웠다"고 했고, 재야단체에서 활동중인 한 교수도 "우리 역사를 한단계 발전시킨 인물"이라고 호평.
그러나 한 여성인사는 "일본군인 출신이라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인물"이라 꼬집고 "그의 여성편력 하나만 보더라도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평가절하.
◎…관계 인사들은 '현 정부들어 위축감을 느낀 적이 있는가'하는 질문에 대해 은유적인 표현으로 현재의 심정을 밝히는 모습.
일부 관료는 "세월이 말해줄 것" "역사가 답해줄 것"이라며 우회적인 표현을 썼고, 일부는 노골적으로 억울함(?)을 하소연한뒤 익명으로 보도해 줄 것을 부탁.
또 다른 인사는 "지역감정을 부추길 수 있는 질문"이라며 "대답할 의미를 못느끼겠다"고 답변을 거부하는 등 민감한 반응.
한 교수는 "이번 정권에 대해 처음엔 호의적이었는데 이젠 예전 정권과 다를 바 없음을 알게 됐다"면서 "이념이나 사상이 지역색을 누를 수 없다"며 개탄.
◎…이번 인터뷰에서 상당수 대구·경북출신 인사들의 답변 내용이 비슷하고 동일한 지역정서를 갖고 있는 것으로 분석돼 관심.
이들은 '고향에 대한 자부심'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평가' '21세기 대구·경북인의 위상' 등에 대해 상당히 긍정적인 대답을 했고, 대구·경북인의 덕목에 대해서도 대개 대동소이한 내용을 열거하는 모습.
그러나 검찰 고위직 출신의 한 변호사는 "자신들의 능력을 키우지도 못하고 청와대나 정치권에 줄만 대려는 촌스러운 사람들"이라면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파당을 만드는 문화를 근절하지 않으면 앞으로 발전이 없다"고 일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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