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동포 100년 (11)재일동포 모국방문단(중)

입력 1999-12-27 14:18:00

조총련계 재일동포 모국방문단 사업은 당시 한국 정부의 현상타개를 모색하려는 구상과 장기간의 조직혼란을 극복하려는 민단에 의해서 추진된 사업이었다. 그러나 해방후 30여년이 되도록 부모형제를 만나지 못했던 재일동포들에게는 꿈에도 그리던 고향을 찾을 수 있는 기회였으므로 처음부터 많은 동포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사업이었다.

성묘단 사업은 조총련 조직의 방해를 예상하여 우선 소규모의 인원으로 출발하였다. 그러나 방문횟수가 거듭될 수록 각 언론기관의 보도로 널리 알려지게 됐다. 이 사실은 대부분이 남한지역 출신인 조총련 소속 재일동포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1975년 1차 추석성묘단 모국방문이 성공리에 종료되고 한사람의 사고도 없이 전원이 무사히 귀국하게 되자 조총련 소속 동포들의 동요는 더욱 현저해졌다.

다음해 실시된 1976년의 2차 성묘단에는 참가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자 초조해진 조총련 조직은 여기저기서 폭력 방해를 시작했다.

조총련에 의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저질러진 성묘단 참가 저지 행위중에서 대표적인 사례를 보면 76년 한식 성묘단에 참가하기 위해 도쿄 하네다(羽田)공항에 나온 당시 72세 허윤선 할머니를 집단폭행한 후 강제 납치했다. 또한 그해 추석 성묘단에 참가하려던 14세 강영자양을 공항에서 납치해 연금했고 77년 한식 성묘단에의 참가를 예정하고 있던 19세 김신강양은 외출중 납치돼 연금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러한 방해 속에서도 참가자는 더욱 늘어나 서울을 비롯한 각지에서는 호텔의 객실 부족으로 고생하는 사태가 야기되기도 했다.

그러나 성묘단 사업은 각계의 주시와 동포사회의 관심, 그리고 본국 국민들의 치열한 환영속에 확대를 거듭해 모국 방문이 시작된지 만 1년만에 참가자 수는 1만명을 돌파했다. 혈육을 찾겠다는 이산가족들의 모국방문 행렬은 이데올로기에 관계없이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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