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紫微垣의 꿈을 향하여

입력 1999-12-23 00:00:00

중국 최고의 역사서인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는 역사기록 외에도 천문, 예악, 치수(治水) 등을 집성한 팔서(八書)를 싣고있다. 그중에서 천관서(天官書)는 동양고대인들의 천문학적 사상을 표현한 글로서 그 첫머리는 자미원(紫微垣)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하고 있다. 이 글을 잠시 옮겨보면 '중관(中官=하늘의 정중앙으로 하늘나라의 벼슬자리의 중심)에는 천극성(天極星=북극성)이 있는데 그 중 밝은 별 하나는 태일(太一=천신의 별명)이 상주하는 곳이다. 그 옆의 세 별은 삼공(三公)에 해당하나 어떤 이는 천제의 아들이라고도한다. 태일 뒤로는 네 별이 굽어져 있는데 맨 끝의 큰 별은 천제의 정비(正妃)이고 나머지 세 별은 후궁(後宮)의 무리이다. 이들을 둘러싸 호위한 열두 별은 변방을 지키는 제후들이다. 이들 모두를 자미원이라고한다'고 했다. 우주를 지배하는 으뜸자리로서 자미원을 지칭하는 것이다.

◈세계경영의 별자리

이같은 중국고대의 천문사상은 별들의 세계를 표현하면서도 그 설명방법에선 인간세상인 이른바 중국의 천하 지배이념을 담고있는 것이다. 이른바 세계경략의 꿈을 자미원 별자리에 가탁(假託)했다고나 할까. 묵은 천년을 보내고 새 천년을 맞이하려는 시점에 자미원의 꿈을 들춰내는 것은 우리로서도 그 까닭이 있기 때문이다사마천이 기록했다지만(위서란 논란도 있음) 이같은 자미원의 꿈은 중국에만 있어온게 아니다. 세기말이면서 단기(檀紀)로 세 번째 천년을 넘겼고 서기로는 세 번째 천년을 맞이하는 장구한 역사를 가진 우리도 옛부터 그러한 꿈을 가지고 살아왔다. 믿든 말든 이 땅의 생기를 신앙처럼 여겨온 풍수지리가들은 이 땅 어디엔가 자미원국(紫微垣局)이란 명당이 있다는 생각을 가져왔다. 자미원국에 묘지를 잡으면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세계를 지배한다는 믿음이 있었던 것이다. 명당으로서 자미원국 뿐만 아니다. 지금도 산사에 가면 불교의 교리와는 상관없는 칠성각(七星閣)이 있다. 또 사람이 죽어 장사를 지낼 때 시신을 반듯이 칠성판 위에 눕힌다. 이같은 풍속은 지금의 매장문화에만 있는 게 아니다. 수많은 고인돌에서 발견되는 일곱개의 구멍들은 바로 이 북두칠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깊고도 먼 민족의 꿈

이렇게 우리민족의 뿌리에 북두칠성이 자리잡고 있는 것은 자미원을 만들고 있는 북두칠성에 대한 염원이 어떠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어쩌면 사기 천관서의 사상은 우리 동이족(東夷族)의 염원과 이상을 담은 것이란 생각도 든다. 우리민족이 일찍부터 세계경영의 꿈을 품어왔다고 한다면 국수주의적이란 비판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이른바 서구의 세계화란 것이 선진국의 국가주의적 국익을 바탕에 깔고 있었음을 똑똑히 보아온 우리로서는 민족의 이상과 현실을 직시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새 천년을 눈앞에 두고 민족의 웅대한 꿈을 소중하게 간직해야할 사명을 경건하게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거짓과 타락 버리고

그러나 남북분단의 현실이나 거짓과 부패와 타락으로 얼룩지고 있는 오늘의 정치상황은 꿈이 큰만큼 절망의 깊이를 알지못하게 한다. 너무나 째째해서 오히려 듣는 귀가 부끄러운 옷로비의 전말과 최근의 여러 사건들은 우리가 가진 정신적 시궁창을 보는 것 같다.

이제 묵은 천년의 끝이 우리가 지녀온 모든 부정 부패 불의를 한꺼번에 내보내는 큰 강의 하구(河口)가 되었으면 하는 심정 간절하다. 잡다한 오물을 바다에 내보내는 강물이 끝없는 바다의 품속에서 새로운 탄생을 얻듯이 우리민족도, 우리국가도 그렇게 크고 생기에 넘치는 새로운 생명을 얻기를 기도해보는 것이다.

누가 선도했든 세계는 이미 신부족사회(新部族社會)라고 일컬어질만큼 지구공동체로 만들어지고 있다. 그러나 지구촌은 옛날 옛적 축제와 정감으로 살았던 시절과 같은 부족사회가 아니다. 새로운 생존경쟁의 장으로 너무나 살벌한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국경없는 경제를 상징하는 세계무역기구(WTO)체제가 미국 시애틀에서 약육강식의 현장을 보여주었고 세계의 남북현상은 지구촌 전체의 풍요에 아랑곳 없이 빈곤한 남쪽의 숱한 사람들이 굶어죽고 있는 현실을 드러내고 있다. 묵은 천년을 보내면서 새로운 지구촌에서는 민족의 오랜 꿈인 세계경략의 꿈을 키워야겠다. 새 천년에는 자미원의 꿈을 향해 달려가자.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