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학으로 통역장교를 역임한 김택곤(65·범어신협이사) 할아버지는 남구종합사회복지관에서 또래 노인들에게 한글을 가르친다.
"한글을 몰라서 노래를 따라부르지 못하는 노인이 상당히 많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날 이후, 김할아버지는 일흔 전후의 문맹 노인들에게 글을 가르치고 매일마다 일기 지도를 하고 있다. 처음에는 초등학교 교과서를 써보았으나 지금은 실록 소설 '조선왕조 5백년'을 교재로 쓰고 있다.
"글자는 모르지만 세상 경험이 많고 이해성이 빠른 노인들의 특성에 맞춰서 교재를 바꿨습니다"
한글과 역사를 동시에 가르치는 김할아버지는 한시간을 가르치기 위해 일주일 꼬박 백과사전을 들여다보고, 부교재를 들여다보며 알차게 수업을 준비한다. 노인학생들은 "노인 심정은 노인이 안다. 매주마다 일기장을 검사(?)받는게 즐겁다"며 한글시간을 고대한다.
국내외에서 알아주던 곤충학자 이창언(65·반도곤충학연구소장) 전 경북대교수는 효목도서관을 빌려서 노인들을 위한 평생교육의 터전인 사회문화대학을 꾸려가고 있다.
사회문화대학의 회원은 300여명. "사회문화대학의 회원 가운데 65~70%가 초중등학교나 대학, 혹은 공직이나 기관에 근무했던 인텔리 노인들입니다"
전문성을 갖고 있어서 정년퇴직으로 인한 사회적 역할을 상실한 이곳 회원들은 지금은 교육을 듣고 가는 수동적인 활동에 그치지만 수요만 있으면 얼마든지 발휘할 능력을 갖추고 있다.
한정된 노인복지재정 탓에 절대빈곤선 이하의 노인이나 생계 유지가 힘든 저소득층 노인이 우선적인 사회복지서비스의 대상이기는 하지만 이제는 안정적이고 전문성을 지닌 노인들, 일터에서 퇴직한 노인들이 그들의 능력을 사회에 되돌릴 수 있는 생산적인 복지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이다.
98년말 현재 대구시내 노인은 13만여명으로 약 7%를 차지하고, 2020년에는 14%까지 늘어나게 된다. 노인 인구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노인들이 사회에 참여할 기회를 차단, 가만히 모셔(?)둘 만큼 우리 사회가 노인부양능력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즉 노인인구가 14%로 증가하면 7명의 청·장년(경제활동인구)이 1명의 노인을 먹여살려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실제 인구의 고령화(노인인구가 7%), 고령(〃14%), 초고령화(〃21%)로 치닫는 속도는 서구 선진국에서 100여년 이상 걸렸던 기간의 3분의 1에 그칠 정도로 압축적이어서 그에 수반될 부작용에 미처 대응할 여력이 없을 정도.
이처럼 전문성을 갖춘 노인들의 활용은 가족의 힘만으로는 절대 이룰 수 없는 과제. 당연히 지역사회, 노인관련기관, 노인정책담당부서가 관심을 가지고 그들의 힘을 결집시킬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주어야한다.
"인텔리 노인을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하는게 21세기형 노인복지의 과제"라고 김정자(사회복지학) 계명대 여성학대학원 교수는 강조한다.
초고령화사회로 치닫는 일본은 퇴직한 노인들이 자본과 기술을 합쳐서 최고급 호텔을 성황리에 운영하고 있으며, 노인과 청년들이 한팀을 이뤄 전기회사를 꾸려나가는 곳도 있다. 서울시도 노인인재뱅크를 결성, 인텔리 노인의 활용에 발빠른 대처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2000년대 노인복지는 심신이 건강하고, 전문성을 갖춘 노인들이 그들의 역량에 맞추어 사회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생산적인 복지, 문화적인 복지를 타깃으로 해야할 것"이라는 이창언 사회문화대학장은 대구시나 구청에서 250~300명의 노인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만 확보해주면 노인을 위한 종합적인 프로그램을 개설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대구노인의 전화 김지숙간사는 "노인관련 기관들이 자기 기관 이외에는 관심을 갖지 않아서 전체적으로 전문성을 가진 노인들이 얼마나 분포하고 있는지 파악이 되지 않고 있다"면서 기관의 경계를 넘어서 차별화되고, 전문화된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도록 지역사회에서 관심을 가져야한다고 말한다.
법을 전공한 노인은 법률상담서비스, 보건복지분야에서 일한 노인은 캐어(care)서비스, 요리솜씨가 좋은 할머니는 신세대들에게 손맛 전하기, 보험 금융쪽에서 일한 신세대 노인은 재테크 상담, 노래를 잘부르는 할아버지 할머니는 노래와 율동 봉사를 하면서 노년기의 특성인 '상실'을 넘어 더불어 살도록 지역사회에서 그 터전을 마련해주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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