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사회 구성원들 간에 상호소통을 가능케 해준다. 이런 점에서 그것은 비록 보이지 않는 무형의 통로이긴 하지만, 인체에 비유하면 핏줄과 같은 것이다. 물론 가장 우선되어야 할 점은 이 통로가 열려 있어야 한다는 점일 것이다. 불필요한 물질이 쌓여 혈관이 좁아지게 되면 동맥경화에 걸리듯이 언로가 원활하게 뚫려있지 못한 사회는 건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에 못지 않게 요구되는 바는 이 통로를 타고 흐르는 말 자체의 수준 높은 질이다. 그 질은 단지 진실성 뿐만 아니라 말이 풍기는 향기까지를 포함한다.
오늘 우리의 말들은 향기를 잃어버리고 지나치게 메마르고 거칠고 공격적이다. 장난기 섞인 조소와 악의에 찬 험담이 넘쳐나고 있다. 본래 조롱과 해학과 풍자는 사회 비판적 기능을 수행하는 적절한 말하기 방법이다. 우리의 전통 문학양식인 판소리 사설이나 사설시조, 그리고 일제 강점기 채만식 소설 등에서 볼 수 있는 해학과 풍자는 격조 높은 시대 비판의식을 담고 있을 뿐 아니라 우리에게 심리적인 후련함까지 안겨준다. 그런데 요사이 출판물이나 언론매체나 가상공간을 채우는 말들에는 직설적인 비방과 독설이 너무 많다. 진실을 말한다는 명분을 앞세우나 거기에는 짙은 환멸과 폭력의 냄새가 풍긴다.
언어는 그 시대와 사회를 반영한다. 말이 혼탁해지는 것은 사회가 맑지 못하기 때문이다. 혼탁한 사회의 무질서를 바로잡고 헛된 우상을 깨기 위해서는 날카로운 비판과 아울러 호된 질책의 언어가 필요하다. 이러한 진실을 밝히고 말하는 것은 그 어떤 것보다 가치 있는 일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그 비판의 언어들이 생산적이지 못하고 또 다른 욕망을 위한 파괴적인 공격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우리 사회의 만연된 거짓은 강한 독설과 웅변이 아니면 치유되기 어려울 지경에 도달해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비생산적인 비난이나 냉소적인 조롱이나 공격적인 독설이어야만 되는 것은 아니다. 강한 비판을 하기 위해서 때로는 향기와 같은 말의 절제와 여백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신재기.문학평론가.경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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