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놀라왔던 순간의 기억. 83년도 8월7일, 일요일. "이 경보는 실제 상황입니다.
현재 시간 서울·경기 지역에 적기가 내습하고 있으니, 백화점·시장·빌딩 등에 있는 시민들은 대피소로, 거리를 통행하는 차량들은 길가로 즉각 대피해 주십시오. 모든 직장과 가정에서는 계속해서 발표되는 민방위 본부의 지시에 따라 행동해 주시기 바랍니다". 야구 중계를 보든가, 아들 데리고 목욕탕에 갔던 많은 사람들이 혼비백산했다. 그 일요일 오후 3시24분의 상황.
한국전쟁 휴전 이후 30여년만에 처음 발령됐던 이 실제 공습경보는, 많은 국민들의 무의식 속에 묻혀 있던 전쟁에 대한 공포를 생생하게 되살려 냈다. 곧 밝혀진 경보 원인은 중공기 귀순. 놀란 가슴을 가라 앉히면서는, 우리의 든든한 공중 방호망에 마음 든든해 하기도 했었다. 비록 13년 뒤의 북한 미그기 귀순 때 무참히 깨어지고 말 신뢰였지만.
먹고 사는 것은 물론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국가의 안전은 그 선행 조건이다. 일본에 의해 그 많은 세월을 침탈 당한 한민족. 그런데도 광복은 곧 분단이자 살상이었다. 새 정부를 제대로 구성하느니 마느니 할 때부터 시달리기 시작하더니, 50년도 더 보낸 지금까지 안전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 여순반란, 빨치산, 한국전쟁, 여객기 납북, 무장공비 청와대 습격 시도, 100여명이나 되는 무장공비의 침투, 땅굴, 도끼 만행…
80년대 들어서야 뭔가 조금 풀리는듯 했지만, 그래도 그 중간 중간엔 늘 옛것이 끼어 들었다. 소련 전투기의 우리 여객기 격추, 아웅산 폭발, 김현희 KAL기 폭파, 물바다·불바다 운운… 90년대에도 불투명하기는 마찬가지. 양측 총리들이 왔다갔다 했지만, 이번엔 핵문제·미사일문제로 번지더니, 또 무장 잠수함 침투에 남북해전까지 이어지고 있으니, 언제 또 무슨 일이 생길지.
하지만, 변화도 많았다. 일본이나 미국과의 기본적 관계 설정이 마무리됐고, 러시아·중국과 국교를 트기도 했다. 일단 북한 이외의 주변 국가와는 새로운 세기를 향해 갈 기반을 확보한 셈이랄까. 여기에다 월남에, 소말리아에, 또 어디에… 이제는 평화유지군까지 보낼 정도 아닌가.
여기다 우리를 휘둘러 왔던 사상 다툼도 큰 줄기는 거의 잡아 가는 듯하다. 돌이켜 보면, 공산주의 이념을 놓고 우리가 파쟁을 겪어 온 역사는 80년에 가깝다. 소련에서 공산 혁명이 성공한 후에는 줄곧 그랬던 것. 일제시대에도 적잖은 갈등이 있었고, 중국 땅 독립운동가들 사이에서도 그랬다. 우리 임시정부나 광복군 못잖은 세력을 형성했던 조선민족혁명당. 김원봉을 대표로 한 그 조직은, 우리 교육과정이 반영하지 않아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을 뿐이다.
하지만 김구 선생과 김원봉은 그런 두 이질체까지도 하나로 만들어 내는 저력을 보여줬다. 그런 역사가 있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오직 세계 조류만의 덕인지, 90년대 이후엔 이 사상 문제 역시 고비를 넘겼음에 틀림 없어 보인다.
72년도던가? 이후락 당시 정보부장이 북한을 다녀 왔노라 발표하던 때의 그 희망 주던 충격. 나아가 고향 방문단이 남북을 오가던 80년대 중반의 푸른 기쁨, 남북한 총리가 7차례나 서로 오가더니 드디어 남북 정상회담 합의까지 해 내던 장관, 그리고는 이제 많은 사람들이 금강산을 다녀 오고 있지.
하지만, 아직은 께름칙하다. 어쩐지 겉껍데기 같다. 여기다 또다른 조짐.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고 아무 의심 없어 하던 우리네 사람들 중 적잖은 숫자가 태도를 바꾸고 있는듯 하잖은가. 왜 심드렁해지는 것일까? 혹시 자기 자신의 삶이 고달파져 옆 돌아 볼 여유를 잃은 때문은 아닐까? 우리 사회의 등뼈를 이뤘던 중간층이 몰락하면서 나타나는 현상인가.
나라의 안전이 우리 삶의 전제 항이듯, 우리의 건강이 확보되지 않으면 나라도 위태로와질 수 있음을 말하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결국 우리는 또다른 숙제 속으로 가라 앉고 있는 셈이다. 이웃과 경쟁해 왔듯, 앞으로는 그렇게 세계와 다퉈야 한다는 21세기가 내일 모레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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