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 한국경제 결산

입력 1999-12-15 14:00:00

올해 한국경제는 구조조정과 경기회복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데 주력한 한 해였다. 금융구조조정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고 외환위기도 극복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또 IMF속에서도 국민들이 주식투자에 몰두, 증시활황의 기폭제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미완의 구조조정, 빈부격차 해소, 산업구조 개편 등 해결과제도 산적해 있다. 지난 1년의 한국경제를 조명해 본다.

▨금융구조조정

98년이 '퇴출'의 해였다면 올해는 '생존'의 해였다. 사상 초유의 구조조정 소용돌이 속에서 지역을 비롯, 국내 금융기관들은 살아남기 위한 눈물겨운 경쟁을 벌였다. 부실여신을 줄이기위해 여신심사위원회를 도입, 임원들의 간섭을 사전 차단했으며 상임임원수를 줄이고 비상임이사를 늘려 경영투명성 확보에 나섰다. 이사회운영위원회, 감사위원회, 리스크관리위원회, 경영발전보상위원회 등을 설치해 합의중심의 경영전략 수립방식을 도입했다. 조직에 대한 혁신도 벌여 은행들은 개인고객본부, 기업금융본부, 각 지역본부 등으로 나눠 독립채산제를 실시하고 있고 전산과 리스크관리, 여신관리 등의 분야에 외부 전문가를 과감히 영입했다. 리스, 금고 등 부실 자회사들은 매각하거나 흡수합병하는 방식으로 정리됐다. 선진 금융기법을 도입하기 위한 외국은행과의 전략적 제휴는 금융기관의 달라진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금융기관들의 혁신이 어느 정도 실효성을 거둘지는 미지수다. 제도도입 등 하더웨어도 중요하지만 소프트웨어 혁신이 관건이다. 전문가들은 금융기관들이 서구화된 각종 제도를 도입했지만 이같은 제도를 제대로 운용, 또다시 부실채권을 만들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견을 보이고 있다.

▨워크아웃기업

12월결산 상장기업이 올해 사상최대인 12조8천억원의 순이익을 올렸지만 뒷전에는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위크아웃기업들이 자리하고 있다. 금융구조조정은 64조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돼 마무리단계에 접어들었지만 기업구조조정은 시행 1년이 넘도록 시행착오 속에 시작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조만간 추가될 대우 12개 계열사를 포함, 79개 워크아웃기업들이 66조라는 천문학적인 빚을 진 채 기업구조조정의 발목을 잡고 있다. 워크아웃이란 이름을 붙여 일단 발등의 불부터 꺼야한다는 정부 및 경제계의 판단이 이같은 사태를 불러왔다. 이들 79개기업은 지난 1~9월중 영업이익이 목표의 절반정도에 그치고 있고 특히 37개 기업은 경상적자 폭이 확대됐다. 자구계획도 워크아웃기간(3~5년) 연간 목표의 34.2%에 불과하다. 자산매각, 계열사 정리도 뜻대로 안되고 있는 실정이다. 우방, 갑을, 동국무역 등 지역기업과 동아건설, 진도 등은 2차 채무조정을 해야할 판이다. 그러나 이제는 냉정한 시각으로 살릴기업과 퇴출기업을 구별해야 한다는 시각이 공론화되고 있다. 현재 채권단은 미래가 불투명한 기업에 대해선 더 큰 손실을 부르기 전에 정리한다는 방침아래 부실기업을 고르고 있다.

▨재벌개혁

정부는 재벌총수가 얼마 안되는 자본금을 갖고 수십개의 계열사를 장악하는 것을 막기 위해 출자총액제한제도를 부활하고 부당내부거래 감시제도를 강화했다. 총수 1인 지배경영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기업지배구조 모범규준'이 마련됐고 소액주주들의 권리행사가 좀 더 쉬워졌다. 또 대표소송 제기권, 이사 감사해임청구권, 회계장부열람청구권, 주주제안권, 임시주총소집청구권 등의 각종 장치에 대한 접근이 간소화됐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적 장치들중 일부는 국회심의 과정에서 당초 계획에서 많이 변질돼 과연 개혁의지가 있느냐는 비난을 일으키고 있다. 법이나 제도의 개선보다 이를 운용하는 기업인들의 투명하고 효율적인 경영자세가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차입경영

해방이후 계속된 재벌들의 차입경영이 대우그룹 몰락으로 막을 내리기 시작했다. 부채비율 200%는 재벌들의 최대현안으로 떠올랐다. 재벌개혁을 위한 정부의 정책이 부채비율 감축에 맞춰졌기 때문에 재벌들은 계열사를 매각하거나 합병하는 등 몸집을 줄여야 했다. 금융기관에도 자산건전성분류기준이 도입되면서 부채비율이 높은 기업은 설자리가 없어지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벌들의 부채비율 낮추기는 외양에만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 없지않다. 연말까지의 부채비율 감축목표 200%는 상호출자지분이 감안되지 않은 것으로 실제 부채비율은 이보다 훨씬 높다는 것. 4대그룹 평균 40%에 달하는 상호출자지분은 실질적인 외부자본 유입이 아니어서 실질 부채비율은 최고 300%정도 높아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또 사업매각 등 실질적인 구조조정없이 2금융권 등의 자금 독식으로 부채비율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4대재벌은 올들어 지난달말까지 증시를 통해 작년보다 292%나 늘어난 15조7천186억원의 자금을 조달했다. 뼈를 깎는 구조조정보다는 증시활황을 틈타 개미군단의 투자자금을 끌어모아 부채비율을 낮췄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주식열풍

올해 주식투자 열풍은 광적이었다는 것이 증시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아줌마부대에서 대학생, 퇴직자, 직장인 등 직업과 연령, 성별 구분없이 증권사 객장을 가득 메웠다. 지난해 9월 355만계좌에 불과했던 위탁활동 주식계좌수는 지난달 700만계좌에 육박했다. 뮤추얼펀드와 주식형 수익증권 등 간접투자상품이 주식시장의 한 축으로 자리잡았다. 공모주청약, 전환사채, 신주인수권부사채 등 생소했던 각종 투자상품에 투자가 이어졌고 정보통신과 인터넷 관련주 인기와 맞물려 코스닥이 '꿈의 시장'으로 등장했다. 주식열풍은 토지, 주택 등 실물자산을 보유하려는 경향이 많은 우리국민들이 금융자산에 눈을 뜨게한 효과를 줬다. 그러나 과거와 마찬가지로 개미군단으로 불리는 개인투자자들은 항상 기관과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눌려 재미를 보지 못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최근 한 민간연구기관의 조사에 따르면 개인투자자들의 평균 주식투자 수익률은 4.6%에 그쳐 정기예금금리수준에도 못미친것으로 나타났다. 증시전문가들은 투기성거래에 집착, 피해를 보기보다는 전문가들이 운용하는 간접투자상품에 맡기거나 기업의 실적을 분석, 장기투자하는 선진국형으로 투자형태가 바뀌어야할 때가 됐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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