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달리기 선수로 뛰었고 대학졸업후 의사의 길을 걷다 다시 체육계에 투신해 체육부장관까지 지낸 김집(73) 한국청소년육성재단 명예회장.
소아과원장, 의대교수, 경북체육회실무부회장, 대한체육회부회장, 한국올림픽위원회부위원장, 올림픽선수단장, 국회의원, 체육부장관 등 그의 이력이 말해주듯 의사의 삶보다 체육인으로 더 잘 알려진 인생을 살았다.
경북 상주 함창이 고향인 김회장은 함창초교를 마치고 경기중과 경북대 의대 시절 육상선수로 잠시 활약한 그는 해방후 48년 경북체육회이사를 맡으면서 본격적으로 체육과 인연을 맺었다. 72년 경북체육회 실무부회장을 끝으로 무대를 중앙으로 옮긴 그는 정치인으로 변신해서도 한국체육의 발전에 줄곧 관심을 기울였다.
73년부터 대한체육회 이사를 맡은 뒤 그는 특유의 마당발을 활용, 81년부터 87년까지 국회의원생활을 하면서 국회서 88년 서울올림픽지원 특별위원회 간사로 활약했고 건국이래 최대 축제였던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 조직위 집행위원도 맡았다. 특히 87년 국회의원으로 서울올림픽 조직위 집행위원이던 그는 당시 불안한 정국 등으로 올림픽의 서울개최를 재고해야 한다는 국제여론를 잠재우느라 동분서주했다. 당시 6.29선언이 발표되기 이틀 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으로 현지조사를 나온 루마니아 스페루크위원을 설득, 결국 서울개최가 차질없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한몫했다.
그는 한국대표선수단 사령탑인 단장을 맡아 86.88년 두대회서 빛나는 전과를 올렸다. 서울올림픽에서는 체육사상 전무후무한 세계4강의 위업을 달성, 그해 12월 체육부장관에 올랐다. 1년3개월간의 장관을 끝으로 체육일선에서 물러난 그는 지금도 대한체육회 고문과 올림픽 마라톤 후원회장을 맡아 체육과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체육에 기여한 공로로 그는 경북문화상과 대한민국 체육훈장 맹호장.청룡장.청조근정훈장등 수많은 훈포장을 받았다.
鄭仁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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