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대에 들어서면서 지속적인 가뭄과 정치적 혼란으로 피폐해진 조선은 왜(倭)의 태평양전쟁 군수기지화로 거의 모든 생산자원들이 고갈돼 생산에 대한 여력이 남아 있지 않게 됐다. 그리고 뒤이은 6.25전쟁은 모든 생산시설을 파괴해 경제는 그야말로 끝갈 데까지 피폐해졌다.
'한 나라의 경제가 성장하려면 시장 규모가 적어도 5천만명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명제는 수요가 있어야 생산이 이루어진다는 현대경제학의 사상이다. 수요 중심의 경제 발전 사상은 이 땅에서도 일찍이 정조 때의 실학자 박제가(朴齊家)에 의해 주장되었으나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1961년 군사정부는 수요 창출에 의한 경제 성장 정책을 펴면서 협소한 국내시장을 벗어나 외국의 시장 수요를 기반으로 하는 수출 위주의 경제 발전 정책을 폈다. 금이 간 빈 독에 물이 차오르지 않듯이 워낙 낙후되었던 터라 경제 발전은 더디기만 하였으나 1970년대에 중동 건설 붐이 일고, 월남전 특수로 달러가 유입되면서 경제 발전은 가속이 붙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국에 유입된 달러는 생산시설보다는 땅에 묻히면서 부동산 투기를 불러일으켜 물가를 높게는 연간 50% 가까이 상승시켰고, 물가 상승에 의한 수출 가격 상승은 수출 기반을 크게 죽였다. 달러 유입이라는 발전의 호기가 오히려 성장의 마(魔)가 된 것이다.
제3공화국이 엄청난 투자 거름으로 자갈밭을 옥토로 만들었다면 그 열매는 1980년대 전두환-노태우 정권 시절에 국제적인 저유가-저금리-저물가와 맞물리면서 주렁주렁 맺히게 되었다. 그러나 80년대의 정권은 열매를 따먹을 줄만 알았지 연구-기술 개발 및 투자는 게을리해 90년대의 경제 기반을 척박하게 만들었다. 한편 국민의 관심을 정치에 돌리기 위해 해외여행 자유화, 수입 자유화로 1인당 GNP로 따지면 세계에서 50여위밖에 안되었던 한국 사람들이 마음껏 써보도록 소비심리를 부추겼다.
'한국 사람은 외상이라면 황소도 잡아 먹는다'는 말과 같이 96년 한국은 263억 달러라는 빚을 얻어 무역 적자를 갚는데 237억 달러를 썼다. 96년 한국 사람들이 빚어내 해외여행에 쓴 경비는 80억 달러, 마신 술은 시바스리갈의 세계 생산량의 80%, 30년생 발렌타인 및 로얄살루트의 세계 생산량의 3분의1이었다.
우리가 겪는 IMF는 한 마디로 말하면 '쓰고 보자'는 소비심리와 '하면 된다'는 주먹구구식 과잉 경영의욕이 감당치 못할 벅찬 빚을 내어 쓰고 갚을 돈이 없어 국가 부도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을 의미한다. 거품으로 인한 생사(生死)의 수술자국이 아물기도 전에 정치 시류에 맞추어 정부는 IMF는 끝났다고 선언하고 우리 주위에는 새로운 낙관주의의 거품들이 끓고 있다.
우리의 많은 은행이나 기업들이 외국인들 손에 넘어가고 증권시장도 외국인의 손에 놀아나는데, 그들이 흩어놓은 돈을 다시 거두어 돌아가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데 어제 당했던 고초를 벌써 잊어버리다니. 새 천년의 진정한 우리 경제의 과제는 다른 무엇보다도 가치관 정립이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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