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빈곤층 그들은…(2)거리 내몰린 가장들

입력 1999-12-14 15:08:00

"남자들이 집을 나가 노숙자로 전전하는 이유를 아십니까" 취재중에 만난 한 실직자가 기자에게 던진 질문이다. "글쎄요. 돈을 벌지 못해 생긴 가정불화가 원인이 아닐까요?"

그는 '그것도 모르냐'는 듯 씨익 웃더니 "부인보다 먼저 집을 나가기 위해"라고 정답(?)을 가르쳐 줬다. "아이들 때문이죠" 여자가 집을 나가면 집안이 풍비박산나지만 남자가 나가면 그래도 가정은 보전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불시에 찾아온 가난은 온갖 비극적 스펙트럼을 만들어낸다. 불화, 가정파탄, 가출, 자포자기…. 빈곤층으로 추락한 사람들의 삶은 위태롭기만 하다.

IMF 2년을 막 넘기고 희망의 2000년대를 바라 보는 지금, 경기가 회복되고 빈곤층이 줄어 들고 있다는데 과연 그러한가. 현장의 목소리는 달랐다. 노숙자 쉼터 사감 이재환(53)씨는 "얼마전만 해도 행려자들이 주로 쉼터를 찾았는데 최근엔 30, 40대 실직자들이 매일 3, 4명씩 들어오고 있다"면서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은 이제부터 IMF의 시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말했다.

대구시의 통계도 극빈층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난해말 4만2천명에 불과하던 대구시내 생활보호대상자가 올 9월말 현재 5만1천명으로 크게 늘었다.

"아이들 보기 부끄러워 집안에 있을 수가 없어요" 매일 아침 집을 나와 대구시내 공원을 전전하다 무료급식소에서 점심을 때운다는 박모(51)씨. 얼마전만 해도 페인트공으로 하루 10만∼20만원을 수월하게 벌었던 그는 IMF후 지난 2년간 일한 날을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라고 했다.

저축해놓은 돈도 다 써버리고 이젠 친지집을 찾아다니며 손을 벌리기도 지쳤다고 한다. "온가족이 동반자살할 결심도 해봤지만 아이들이 불쌍해서 그만뒀어요"

극빈층으로 몰락한 가장 대표적인 업종은 건축일용직. 대구건설노동조합 위원장 윤종수(44)씨는 "2년전 17만명을 헤아리던 건설노동자가 지금은 5만여명에 불과하다"면서 "행상, 자영업 등으로 전업한 사람은 그래도 나은 편이고 가정이 부서지고 장기실업자, 노숙자 등으로 전전하는 이들이 꽤 많다"고 했다.

지난해 6월 은행에서 강제퇴출 당한 김모(38·대구시 달서구 상인동)씨. 한때는 연봉 3천여만원을 받으면서 잘나가는 은행원이었던 그는 지금 택시운전을 한다. 김씨의 한달 수입은 100만원 안팎. "힘들고 짜증이 날 때면 길거리에서 방황하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합니다. 저도 그렇게 되지 말라는 법이 있습니까"

김씨가 중산층 사무직의 추락을 보여주는 예라면 정모(41)씨는 무한경쟁에 내던져진 중산층 자영업자의 몰락을 나타내는 경우.

영천에 사는 정씨는 새벽 3시면 자리에서 일어나 부인과 함께 포항 죽도시장으로 향한다. 1t 트럭에 해산물을 가득 싣고 경북도내 5일장을 돌아다니는 일이 여간 힘들지 않다.

그는 한때 '사장님'소리를 듣던 공장주였다. 종업원 5, 6명에 불과한 소규모 섬유공장이었지만 제법 떵떵거리며 살았다. IMF이후 힘들게 버티던 정씨는 지난해말 2억원의 부채를 갚지 못해 결국 공장과 살던 집마저 내놓았다.

가족과 함께 농촌의 빈집을 수리해 옮기고 중고트럭을 사 장사를 시작했다. 처음엔 기존상인들과 심심찮게 멱살잡이를 하면서 고객을 하나 둘 붙잡았다. 그렇지만 뼈빠지게 일을 해도 5명의 가족들이 근근이 입에 풀칠할 수 있을 정도의 수입밖에 되지 않는다.

"하루 버티기가 왜 이렇게 벅찹니까. 그래도 우리같은 사람이 1천만명을 넘는다니까 좀 위안이 되네요"

〈기획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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