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김찬석 논설위원

입력 1999-12-14 14:42:00

민주정치는 '말의 정치', '말을 통한 정치'다. 때문에 정치인들 사이에서 곧은 말(直言), 격조높은 말씀들이 자취를 감추고 남을 헐뜯는 독선과 욕설, 악담들이 난무할때 그 정치는 누가 뭐래도 이미 흔들리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 정치는 분명히 위기상황이다. 여야가 격돌하는 회의석상이면 으레 이××, 저××는 당연한 접두사가 되다시피했고 "호로자식"이니 "네 어머니뻘인데…"소리가 예사로 튀어나오는 판이니 정상적인 의정활동을 기대하기는 애시당초 글러먹은 형편이다. 13일 국회정무위에서는 여당의원이 야당의 여성의원을 상대로 "이 싸가지 없는 ×이…"라면서 손찌검 하는 시늉까지 했다니 이쯤되면 국회인지, 시중의 잡배들이 차라리 얼굴 붉히고 돌아설 난장판이라 해야 옳을 것 같다. 이런 판국에 이번에는 강원일 특별검사팀 사무실에 찾아간 민노총 간부들이 강 특검에게 "×××야, 네가 특검이냐. 이 정도면 나도 하겠다"고 욕설을 퍼부었다고 한다. 노총 간부들의 입장이야 나름대로 이해할만도 하지만 자기 뜻대로 안된다고 이처럼 입에 못담을 욕을 한대서야 되겠는가. 우리는 지금 정치분야이든 사회 각 분야이든간에 남을 설득할 힘도, 남의 말을 들을 여유도 없는 것만 같다. 자신의 이익을 챙기기에 급급하다가 상대방과 맞닥뜨리면 폭력을 휘두르는 것도 불사하면서까지 자신이나 소속 집단의 뜻을 관철하려고 하는 분위기가 사회 전체적으로 확산되는 듯 하다. 그리고 이러한 이상(異常) 분위기는 제 구실을 못하는 정치권에서 비롯된 것만 같으니 큰 일이다. 4년내내 놀다시피하면서도 제 이익 챙기기에만 급급한 국회, 개혁한다면서 선거비용이나 국민에게 덤터기 씌우고 욕설로 영일이 없는 국회…. 이 국회를 보면서 국민들이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배울 것인지 걱정스럽다. "눈 덮인 들판을 걸을 때 함부로 어지럽게 걷지 말라. 오늘 내가 가는 이 발자취가 뒷사람들의 이정표가 될 것이니…" 김구선생이 즐겨쓰던 구절을 나라를 이끄는 의원 여러분들이 한번쯤 되씹어 볼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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