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믿을 구석이 없다

입력 1999-12-09 14:47:00

'망할 놈의 나라, 그렇지만 망해서는 안될 내 조국'

유신 시절 암울한 이 나라의 현실을 견디지 못한채 모두가 전전긍긍 하던 그때 재야 운동가 함석헌선생이 절규했던 이 한마디가 20여년이 지난 오늘날 새삼 떠오르는것은 웬일인가.

20년전 절규 오늘에 생생

새로운 밀레니엄 시대가 코 앞에 열린다고 전세계가 열광하며 새로운 도약을 꿈꾸고 있는 이 때다. 그런데도 우리만은 검사가 검사를 수사하고 기자가 기자를 취재하는 희한한 정경이 연출되는 가운데 '사모님의 거짓말'이 국기(國基)를 흔들고 있으니 나 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안쓰런 마음에 "망할 놈의…"소리가 한숨처럼 저절로 튀어나오게끔 돼 있을것만 같은 요즘이다. 새 정부가 들어선지 지금까지 2년여동안 개혁정치를 다짐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지만 개혁은 커녕 국민에게 최소한의 신뢰감조차 주지 못하고 헤매고 있는 정부 모습을 보며 우리는 차라리 절망하고 있다고 해야 옳을것만 같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이건간에 사건 사고가 없는 때가 있었을까마는 요즘처럼 대형사건과 참사가 끊이지 않은 때도 드물것이고 또 이처럼 뒤처리가 제대로 되지않은 때도 흔치 않을것만 같다. 그동안 총풍사건, 세풍사건, 529사건 등 수많은 사건들이 불거졌지만 여야 정치인들은 어느 것 한가지 속시원하게 매듭짓고 국민 신뢰를 회복한 적은 없었고 그저 유야무야 넘기기에 급급한 무기력한 모습이 고작이었다.

더구나 옷로비 사건과 파업유도 사건, 언론대책문건 등에 대한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은 수준이하였다.

정부 위기관리 수준이하

조기에 진화하면 별것도 아닐 것을 어떻게 우물쭈물 하다가 어디까지나 당당해야할 검찰을 곤두박질 치게하는 어리석음을 저지르고 있으니 김대중 대통령주변에는 인재가 이처럼 없단 말인지 나라 앞날이 걱정스런 것이다.

어찌보면 우리가 겪고 있는 이 위기는 주인 의식을 갖고 소신껏 나라를 이끄는 인재들이 없는데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생각도 든다.

들리는 바로는 중국의 주룽지(朱鎔基)총리는 개혁정치를 주도하면서 100개의 관(棺)을 마련할 것을 항상 다짐한다고 한다.

이 관이란 다름 아니라 개혁이 실패할 경우 자신을 묻을 관 1개와 개혁을 방해하는 기득권 세력 99명을 함께 쓸어 묻을 관 99개를 의미한다는 것이고 보면 주룽지의 개혁에 대한 신념이 어떤 것인지 짐작할만하다 할 것이다.

결국 우리에게는 주룽지처럼 청렴하면서도 유능하고 소신있는 지도자가 없기 때문에 지금처럼 국정이 표류하고 더 나아가 위기관리능력의 부재 현상까지 초래되고 있다고 보아 마땅할 것이다.

누가 집권을 하든 문제는 항상 일어날 수 있고 사건은 터질 수 있다. 그런만큼 문제가 발생한 것 이상으로 이처럼 불거진 사건들을 얼마만큼 정직하고 신속하게 마무리 지을 수 있는지가 중요하며 그에 따라 그 정권의 도덕성과 통치력이 판가름 난다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정책 벗어나 투명한 정치를

그런데 우리에겐 지금 문제를 풀어나갈 힘이 근본적으로 부족한 것만 같으니 걱정인 것이다. 지난 4년간 여야는 틈만 있으만 맞서 티격태격 했을 뿐 대화정치는 아예 염두에도 없었고, 그 결과 사상 유례없이 생산성이 열등한 국회를 만들었다. 그러면서도 여야는 세비인상과 국회의석 지키기에는 손발을 척척 맞추고 있으니 이처럼 염치없고 무기력한 국회에 무엇을 기대할 것인지 한숨만 나온다.

지금 전세계는 묵은 껍질을 벗고 한 울타리속에 서로 엮어지고 있는 중이다. 이 중차대한 판에 국가경영의 선두에 서야할 정치권이 벌이고 있는 저 초라한 꼬락서니에는 정말 넌더리가 난다. 그렇지만 어떻게할 것인가.

함선생의 절규처럼 이땅이야말로 우리가 살고 우리 후손들이 살아야할 하나 뿐인 조국인 것을. 우리가 분노하면서도 결코 정치를 포기치 못하는 까닭은 바로 이 때문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정치권이 늦게나마 이전투구의 정쟁을 버리고 투명한 국민의 정당으로 새롭게 출발하기를 다시한번 기원하게 되는 것이다.

김찬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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