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시론-한국에서 여성대통령이 가능한가

입력 1999-12-03 00:00:00

정치는 파워게임, 영향력게임, 영역게임, 머니게임, 승자와 패자를 가리는 경쟁의 게임이다. 이 게임의 주체는 모두 남성이었다. 남자는 전통적으로 공적인 영역을 지배해 왔고 여성은 가정을 포함한 사적인 영역을 책임져 왔다. 여성은 정치체제의 변두리로 내몰렸고 따라서 여성들은 자신들을 억압하는 정치체제를 오히려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줄 수밖에 없었다. 가부장적 유교문화의 영향으로 여성의 종속적 지위를 강조하고 여성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 한국에서 21세기에 여성대통령이 나올 수 있는가?

전통적 남성중심적 정치구조로 운영되어온 한국사회에서는 여성에 대한 편견과 부정적 대중인식이 존재하고 있다. 여성은 느낌에 따라 움직이고 감성적이며 결정력이 부족하다는 대중적 인식은 정치·경제영역에서 여성의 능력평가에 부정적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정치가의 덕목은 사자의 용맹스러움과 여우의 간교함을 갖춘 카리스마가 필요한데 여성은 정치적으로 수동적이라는 것이다. 여성은 건강·인권·교육·탁아정책에 적합할지 모르나 대외정책·군사·조세·무역·예산을 다루는 데 부적합하다는 것이다. 여성은 모든 일에 이의를 제기하기 때문에 대통령직을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없다는 견해도 있다. 남자 11명이 모이면 축구팀을 만들지만 여자 11명이 모이면 소동을 일으킨다는 말도 있다. 유럽 여자들은 자동 접시세척기를 찾고, 아프리카 여자들은 접시를 씻을 물을 찾고 있지만 둘 다 접시를 씻고 있는 것은 같으며, 여성이 가정 밖으로 나와 정치활동을 추구하는 것은 이기주의적이라는 것이다.

세계에서 여성운동이 가장 잘 조직된 미국에서도 1984년 민주당 부통령후보로 지명된 페라로여사를 제외하곤 대통령직을 남성이 독차지했기 때문에 한국에서 여성대통령을 본다는 것은 먼 훗날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여성에 대한 편견과 부정적인 인식에도 불구하고 국내·국제 정치적 상황은 여성대통령 출현의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국내적으로 남성중심의 정치가 권력투쟁, 부정·부패로 인해 위기를 맞고 있기 때문에 부드럽고 깨끗하며 신뢰감을 주는 여성 리더십이 정치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지식정보화사회에서 섬세함·인내심·상냥함·설득력·지식의 여성적 특질이 남성보다 우세할 수 있다. 국제정치도 군사·안보를 강조하는 고위의 정치에서 경제·사회·문화의 상호의존을 강조하는 하위의 정치로 흐르고 있다. 국제노동기구의 보고에 의하면 세계노동력의 40%를 여성이 점유하고 있으며, 조만간 여성의 공식·비공식적 노동투입이 남성을 능가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세계적인 민주화의 물결과 인권에 대한 관심이 여성의 정치적 영향력을 증대시키고 있다.

한국에서 여성대통령 출현의 시기를 앞당기기 위해서는 여성의 정치세력화가 필요하다. 한국의 여성세력화지수는 102개 국가 중 83위로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여성이 정책결정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려면 선거에 의해서 선출되는 국회의원·시장·도지사 등의 정치직에 더 많이 진출해야 한다. 지금 11명의 여성국회의원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전세계 의회의 10%는 여성이며 유럽에서는 여성국회의원이 25~30%를 차지하고 노르웨이에서는 50%가 여성국회의원이다. 10여개 국가에서는 여성이 대통령 또는 총리로 활약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나를 믿고 따르라'는 신념의 지도자 대처가 있었고, 인도에서는 지난 천년간 가장 위대한 여성으로 선정된 인디라 간디가 있었으며, 인도네시아에서는 '여성대통령은 안된다'는 2억 이슬람세력에 도전한 메가와티가 있었고, 필리핀에서는 국민의 힘을 회복시키고 아시아전역에 민주주의 혁명의 폭풍을 일으킨 아키노여사가 있었다.

여성이 여성을 증오하고 여성이 여성후보에게 투표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선거전략가에게는 잘 알려진 비밀이다. 여성이 여성에게 투표할 수 있는 전략을 만들어야 한다. 여성대통령을 만드는 데 여성이 최대의 걸림돌이나 적이 되어서는 안된다. 여성의 정치적 장래는 언론매체의 역할과도 연계되어 있다. 언론은 여성정치인·여성단체지도자를 부각시키고 집중조명해야 하며 여성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를 제거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열린 마음과 열린 눈을 갖게 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 문을 열어줄 사람이 필요한데, 이 일은 언론의 몫이다.

한국에서 여성대통령의 탄생은 여성에 대한 불평등·권리침해·착취적 조건을 종식시키고 여성지위를 향상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될 것이다. 여성대통령 배출의 열쇠는 여성자신들에게 달려 있다. 여성 스스로가 편견에 굴하지 않고 자신감을 잃지 말아야 한다. 정치생활에 필요한 시간·에너지·경험을 획득해야 하며 비전과 능력·불굴의 의지를 가져야 할 것이다.

부산외대 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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