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의 폐해-고비용·저효율 경제구조 부채질

입력 1999-12-03 00:00:00

1차대전 직후 패전한 독일에서 알뜰히 저축한 국민은 살인적인 인플레로 대부분 알거지가 됐다. 반면 흥청망청 술마시고 빈병을 모아둔 일부 '한량'은 병을 팔아 목돈을 만졌다. 2차대전에서 패전한 독일국민은 인플레 악몽의 재현을 걱정했다. 그래서 중앙은행인 연방은행(Bundesbank)을 제4부의 헌법기구로 만들어 물가안정을 위한 모든 정책권한을 위임, 번영의 기반을 마련했다. 고(故) 지스카르 데스텡 프랑스대통령도 "신을 믿지않는 독일국민은 있어도 연방은행을 믿지않는 독일 국민은 없다"고 말할 정도였다.

우리 나라도 80년대 초까지 연 20% 안팎의 높은 물가상승률을 경험, 아직도 인플레 심리가 불식되지 않고 있다. 이러한 만성적 인플레는 우리 경제의 고비용-저효율을 부추긴 점이 적잖다. 아무리 금리가 높아도 물가상승률이 더 높을 것으로 예상되면 경제주체들은 저축하는 대신 부동산 등에 투자하게 된다. 또 임금·금리·지가 등 생산요소 비용이 올라 제품의 수출경쟁력을 떨어뜨린다.

인플레는 분배도 왜곡시킨다. 화폐자산 보유자로부터 실물자산 소유자로 소득을 이전시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된다. 봉급생활자가 인플레의 피해자라면 정부는 세수가 늘어나 그 수혜자가 된다. 그래서 정부가 인플레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대부분의 나라는 중앙은행에 물가문제를 전담시키며 독립성을 보장하고 있다. 하지만 제도적 장치는 물가안정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중앙은행이 인플레 압력에 대해 정확한 진단과 처방을 하고 각 경제주체들이 이를 신뢰할 때 물가는 안정되고 경제는 성장하는 것이다.

백승호·한국은행 대구지점 조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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