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김찬석 논설위원

입력 1999-12-01 15:14:00

임진왜란 때 명나라 유격장군 심유경(沈惟敬)은 특이한 인물이었다. 일찍이 베이징(北京)의 건달로 전전하던 그는 "왜란을 조기에 매듭 지을 수 있다"고 호언, 단번에 유격장군으로 발탁됐었다. 그러나 당초 장담과는 달리 화의교섭이 결렬 궁지에 몰리자 심유경은 "일본이 항복하고 일왕으로 수봉(受封)하기를 청한다"고 거짓보고했다가 대역(大逆)죄인으로 처형당했다. 요즘 항간에 떠들썩한 옷 로비사건을 지켜 보면서 400여년전 심유경의 거짓보고 사건을 반면교사(反面敎師)로 되돌아 보게 된다. 네 여인이 국회 청문회장에 나와서 '하나님'까지 들먹이며 결벽을 주장했지만 얼마 안가서 거짓이 탄로났고 연정희, 정일순, 배정숙씨는 위증혐의로 고발당할 처지에까지 몰린 것이다. 거짓말 파문은 일파, 만파 급기야는 박시언(朴時彦)전 신동아그룹부회장과 박주선(朴柱宣)전대통령법무비서관이 '옷'사건 최종 보고서 변조 논란을 둘러싸고 맞다, 아니다로 또다시 '거짓말'공방전을 벌이고 있다. 게다가 이 와중에 박주선씨와 전검찰총장 김태정씨의 사법처리 문제까지 대두되고 있으니 청와대와 검찰의 권위도 말이 아니게 됐다. 이쯤되고 보면 여인네들이 대수롭잖게 던진 거짓말 한마디가 국기(國基)를 뒤흔든 대사건으로 번졌으니 새삼 거짓말 한마디가 얼마나 무서운 참화를 불러 일으킬 수 있는지 '심유경 반역사건'을 다시 연상케 되는 것이다. 어쨌든 네 여인이 주역을 한 옷 로비 사건은 단일 사건으로는 최장시간 수사 기록의 영광(?)을 차지했다. 지난 1월 사직동팀 내사를 시작으로 서울지검, 국회, 특별검사, 대검 등 거의 1년 가까운 기간동안 거의 끝났다가는 다시 되살아 나면서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위정자들이 아무렇지 않게 내뱉은 거짓말 한마디가 자칫 어떤 결과를 낳는지 심유경 사건과 이번 사건에서 다시 한번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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