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천년 새판짜기-(3)감성적 자유사고

입력 1999-12-01 14:00:00

대구 청구고 출신으로 컴퓨터 소프트웨어 프로그램 '칵테일'으로 일약 벤처사업가로 변신한 이상협(20)씨. 고교때 처음 '칵테일'을 개발, 컴퓨터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구하러 갔을 때다.

그때 그는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새파랗게 어린 것이 돈을 밝힌다"는 말이었다. 이때 그가 낙담하고 포기했다면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한 벤처 정신은 빛을 발할 수 없었을 것이다.

'천재란 완전한 백치로 태어나지 않은 모든 사람의 운명이다'. 모든 사람이 천재의 잠재성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천재성은 통념의 잣대로 재단하거나 꺾지 않는, 완전 자유 사고에서 빛을 발한다.

자유롭고 유연하며, 탄력적인 생각은 21세기가 요구하는 시대적 사고(思考)다. 20세기에는 50년 후를 예측했다. 그러나 지금은 10년후도 예측하지 못한다. 21세기에 들어서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한다. 유연한 사고가 없으면 새로운 세기의 바다를 항해하지 못할 것이란 것이 인문학자들의 지적이다.

90년대 들어 사고의 변화가 뚜렷한 것이 이성에서 감성으로의 전환이다. '감성'은 이제 신세대의 거대한 담론이 됐다.

이성은 서양합리주의가 잉태하고 길러낸 '사유의 덩어리'다. 오랫동안 인간을 냉철하게 채찍질하며 사회 시스템을 유지시켜 왔다. 이런 이성의 틈에서 감성의 싹이 돋아난 것이 지난 87년 6·29선언 이후. 이데올로기적 민주화 운동이 끝을 낸 시점이다. 유럽에서도 89년 통독과 함께 시작됐다.

감성시대가 이성이 지배하던 시대와 다른 점은 유동적이고 주위 환경 변화에 민감하며 감각적이고, 자기 표현이 뚜렷한 점이다.

'1 더하기 1'은 '2'가 아니라 '5'가 될 수도 있고, '10'이 될 수도 있으며, '짬뽕'이 될 수도 있는 사고의 유연성이 그 특징이다.

컴퓨터에 '리셋'(reset) 기능이 있다. 주판알을 털고 놓듯 처음으로 다시 되돌리는 기능이다. 일각에서 신세대의 부족한 끈기와 인내가 리셋기능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으나 알고 보면 '리셋 정신'은 매우 미래지향적인 생활 자세다.

과거에 집착하지 않고, 낡은 생각을 떨쳐 내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대그룹 부회장을 지낸 이가 양식당 웨이터를 하거나, 초등학교 교장까지 지낸 교육자가 칵테일바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것은 '리셋'의 파격적인 용기와 유연한 사고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재미있는 사람이 성공한다'의 저자 김지룡씨는 "신세대가 살아가야 할 다가오는 새 천년에 '리셋 정신'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감성시대의 특징은 마니아의 출현이다. 배척하기 보다 무관심하며, 자기가 좋아하는 일은 전문가 뺨칠 정도로 집착하는 신세대의 문화적 현상 중 하나다. 마니아는 과거 사고로는 '미친 놈'에 속했으나 지금은 '당차다'는 의미가 강하다. 단순한 추종을 넘어 비판적 연구와 재창조 수준까지 왔다.

감성시대에 '초강력 엔진'을 달아준 것이 디지털혁명이다. 단선적인 아날로그에 비해 디지털은 중층(重層), 복합, 통합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식의 모호하고, 비주체적인 아날로그 사고를 부정한다. 점(·) 하나만 잘못 찍어도 바로 '잘못된 명령입니다'('bad command or file name')라는 반응에 의해 익숙한 컴퓨터 세대의 특징이다.

21세기 사회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장밋빛 꿈과 미래로 가득한 사회일까 아니면 프리츠 랑(감독) 영화의 '메트로폴리스'나 리들리 스콧 감독의 '블레이드 러너'가 보여준 것같은 디스토피아 사회일까.

분명한 것은 어느 세기에도 그랬듯 인간의 창조적 발전 노력은 계속될 것이란 사실이다. 그리고 그 창조적 발전 노력에는 감성을 중심축으로 하는 자유사고가 원동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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