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수능 영역별 분석·2001년도 대처방안

입력 1999-11-25 14:03:00

국가가 주관하는 시험은 출제 방향과 중점사항이 미리 예고돼 큰 틀에 대한 예측이 가능해야 한다. 중·고생을 상대로 하는 시험은 더욱 그렇다. 그러나 이번 2000학년도 수능시험은 전체적인 난이도가 예상에 가깝게 올랐음에도 영역간 난이도 조정에는 완전히 실패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김덕중 교육부 장관은 취임 초에 올해 수능시험에서 만점자가 수백명 나오도록 쉽게 출제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러자 사설입시기관들은 앞다투어 모의고사를 쉽게 출제했다. 학교 수업도 쉬운 문제만을 다루는 쪽으로 전개되었고, 학생들은 조금만 어려워도 외면하게 됐다.

장관의 말 한마디, 한해 한해의 출제 경향이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며 그 다음 한해 고교 수업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상황에서 이번 수능시험을 지켜본 고교 2학년생과 학부모들은 불안해 하고 있다. 시험을 쳐야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현실. 있을 수 있는 여러 변수에 영향을 받지 않는 대비책은 없을까 답답한 것이다. 이번 수능시험 분석과 함께 고득점 수험생과 전문가들의 조언을 통해 영역별 대처방안을 모색해본다.

1·언어영역

자녀 교육에 모든 것을 다 바치는 과열된 우리 교육 현실을 감안하면 금년 수능시험은 많은 수험생들과 학부모들에게 충격을 안겨 주었다. 특히 언어영역에서 실패해 예상했던 점수에 미치지 못한 수험생이 상당수라는 사실은 기존 언어영역 수험준비 방식에 대해 근본적인 사고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이번 언어영역 문제를 살펴보면 독서나 교양, 상식 등은 도외시한 채 교과서와 문제집에만 매달리는 구태의연한 방식으로는 더 이상 고득점이 어렵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문제집과 참고서 위주로 공부를 해온 수험생이 당황해 대부분 제 점수를 받지 못한 반면 평소 독서량이 많고 상식이 풍부한 수험생이 뜻밖에 높은 점수를 거둔 점은 음미해볼 만하다.

원론적인 측면과 교육적인 측면에서 보면 이번 언어영역 문제들은 매우 이상적이고 바람직한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점은 장문의 지문을 읽고 지문의 내용과 일치하지 않는 항목을 찾는 문제(언어영역 13번) 등 빨리 읽고 빨리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상당수의 수험생들은 독서량이 부족해 긴 글을 읽고 내용을 이해하는 능력이 없어 문제 풀이에 어려움을 겪었다.

현재 수능시험에서 언어영역은 독서 능력 테스트를 중시하는 방향을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다. 특히 올해 언어영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독서를 통해 간접경험을 많이 쌓은 학생이 고득점하도록 출제되었다. 그러나 대다수의 수험생들은 문제집과 참고서에 의존하는 공부를 했다. 문제는 학교수업도 현실적으로 교과서와 문제집 위주로 진행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시험은 전체 독서량과 지적 경험이 상대적으로 더 많은 재수생들이 재학생들보다 전반적으로 좋은 점수를 받는 경향이 많았다. 내년 수험생들을 위해 올해 언어영역 고득점자들의 말과 전문가들의 견해를 들어 본다.

◆수험생 반응

-저는 어릴 때부터 책읽기를 좋아했는데 학원에 다니면서도 일주일에 단행본 두 권 정도는 읽었습니다. 고2 예비 수험생들이 겨울 방학동안 소설이나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저술을 10권 정도 읽는 것이 문제집 풀이보다 좋다고 생각합니다. 판에 박힌 획일적인 사고와 해결책을 요구하는 일반 문제집보다 실제 문제가 더 쉬웠습니다.

(재수생 김모군)

-주변에 학교시험과 문제집 풀이에서 모범생들이 언어영역을 망친 경우가 많습니다. 융통성과 상상력, 직관력이 부족하다 보니 획일적이고 기계적인 풀이를 주입하는 참고서식 사고에 매달리게 됩니다. 이런 친구들은 허탈할 정도로 점수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ㄱ고 김모군)

◆교사 인터뷰

-고3 일년 내내 교과서와 문제집 외의 문학작품이나 평론집 같은 책을 한권도 안 읽는 학생들이 대부분입니다. 문제집과 교과서 지문을 이 잡듯이 분석하여 뜯어보는 학습법은 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책을 많이 읽어야 빨리 읽고 이해하는 능력이 배양됩니다. 교실 수업이 아직도 나무에만 집착합니다. 숲을 보는 법도 가르쳐야 합니다. 숲을 보는 능력은 교사의 지도만으로는 불가능하고 학생 자신이 의지를 갖고 꾸준히 노력해야 얻을 수 있는 능력입니다.

-학생들에게 도스토예프스키 같은 작가의 작품을 읽으라고 하면 10페이지도 못 읽고 포기를 합니다. 만화나 스타크래프트 같은 컴퓨터 오락에는 밤새워 몰두하지만 '데미안'이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같은 고전을 읽는 데는 인내심이 없습니다. 보고 듣는 데만 익숙한 학생들에게 읽고 사고하는 문제를 내니 어려울 수밖에.-요즘 젊은이들은 전반적으로 독서기피증에 걸려있습니다. 시대가 아무리 바뀌어도 창조적인 사고력은 독서를 통하여 배양됩니다. 일회적이고 선정적이며 경박하고 천박한 대중문화에 중독되어 있는 오늘의 현실을 바로잡기 위해서도 언어영역은 앞으로도 현재의 출제원칙이 지켜져야 합니다. 수능시험에서 진정으로 고득점하길 바라는 학생은 꾸준히 책을 읽어 독서습관을 가지길 바랍니다.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이 없으면 외국어 영역은 물론이고 나아가 사회탐구, 과학탐구 문제를 해결하는데도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평소 모의고사를 칠 때 언어영역에서 고득점하는 모범생 중에 실제 시험을 망친 학생이 많고, 다소 산만한 듯 하지만 잡다한 것에 관심과 호기심이 많고, 책읽기를 좋아하는 자유분방한 학생들이 점수가 좋았습니다. 이는 수능시험 준비를 하는 수험생들에게 폭넓은 독서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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