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주차전쟁'

입력 1999-11-22 00:00:00

정신분석학의 창시자인 프로이트는 같은 문명안에서 경쟁자 끼리 벌이는 갈등이나 분쟁, 전쟁을 '작은 차이에서 비롯되는 나르시시즘'이라고 했다. 요즘 웬만한 도심이나 주택가에서 벌어지는 주차전쟁을 볼 때 프로이트의 이 말은 정말 실감을 더해준다. 전부가 자기도취에서 벗어 나지 못하고 제 나름대로 이유있는 주차를 해대는가 하면 이를 막으려는 이들은 또 그 나름대로의 이유로 필사적이다. ▲이웃간의 이해와 준법정신은 간데온데 없다. 내 집앞은 안된다고 고집하면 왜 이 땅이 네것이냐며 따진다. 칼부림이 나고 홧김에 자살하는 일까지 생겼다. 필사적으로 막는데 동원되는 방해물건들도 가히 기상천외하고 기발한 것들이다. 물통과 쓰레기통은 양반이다. 폐가구, 드럼통, 간판, 빨래건조대에다 철제말뚝과 쇠줄에 열쇠를 채워 놓기도 한다. ▲주차전쟁의 근본 문제로 주차난 부족을 내세우기 일쑤지만 그러나 그에 앞서 더 부족한것이 바로 공동체 의식이다. 나 자신, 내 가족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가치관은 지역이기주의로 발전한다. 결국 사회전체나 상대방에 대한 배려나 균형감각 없이 공동체 삶의 파괴를 불러와 마침내 자신도 피해자가 된다는 점은 왜 그런지 뒷전이다. 심술과 배짱이 판을 치고 덩달아 사회는 점점 불편해 지고만 있다. ▲이를 보다못한 당국이 팔을 걷었다. 주차전쟁을 둘러싼 주민들간의 시비를 차단하기위해 우선 내집앞 골목길에 다른 사람의 주차를 막으면 거주자 주차우선 구역외에는 강력하게 단속 한다는 것이다. 글쎄 올시다. 이렇게되면 볼썽사나운 방해물건이야 사라지겠지만 정작 서로 민망하기 짝이 없는 주차전쟁 마저 끝날것으로는 생각되지 않는다. 오히려 약만 올리는 꼴이 아닌지 모르겠다. ▲그보다 이미 우리사회에 만연돼 있는 삶의 황폐화와 천박함을 치유할 수 있는 방안을 더 강구하는게 바람직하다. 사회 지도층이 공익을 앞세우는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야만 주차질서도 제자리를 찾아 제대로 구실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지도층이라 스스로 꼽는 국회나 정부기관이나 사법부의 오늘의 꼴이 서민들 주차전쟁 보다 하나도 나을게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는 그들부터 우선 단속하는게 순서가 아닐까.

김 채 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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